여울가 2020. 9. 11. 16:54

#영월장릉

(17)단종릉침(장릉 [莊陵])

조선 제6대 왕 단종(端宗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戶長) 엄흥도(嚴興道)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魯山大君)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장릉은 숙종께서 정종의 릉인 후릉의 예를 따라서 조성하라는 명에 따라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석물 또한 단출하다.

봉분 앞에 혼유석(상석)이 있고, 상석 좌우에 망주석 1쌍이
서 있으며, 그 아랫단에 사각형 장명등과 문인석·석마(石馬) 각 1쌍이 있으나

무인석은 없다.

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8인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配食壇祠),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정려비,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기적비, 정자각·홍살문·재실·정자(배견정 拜鵑亭)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정려비·기적비·정자 등이 있는 곳은 장릉뿐인데

이는 모두 왕위를 빼앗기고 죽음을 맞은 단종과 관련된 것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릉 [莊陵] (두산백과)

★곡장:봉분 보호용으로 능 뒷면에 쌓음
★석호:능을 보호하는 벽사의 의미로 봉분 뒤쪽에 좌우 한쌍
★석양:땅 속의 사악한 기운을 물리침
★혼유석:영혼이 나와서 놀수 있도록 한 직사각형 돌
혼유석 밑에는 영혼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뚫린 고석이 있음. 능 석실로 통하는 출입구 통로를 차단하는 자물쇠 역할을 한다.

★고석:혼유석을 괴는 돌로 북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잡귀를 잡아주는 귀면이 새겨진 4개의 돌
★장명등:왕릉의 장생발복을 기원하며 밝은 빛을 세상 끝까지 비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석마:석호,석양과 달리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사후세계의 이동수단을 의미한다.
★망주석:여덟 모로 깎은 한 쌍의 돌기둥으로 생긴 모양은 남성을 상징한다. 영혼이 세상 멀리 구경을 다니다가 날이 저물면 불빛(망주석)을 보고 찾아온다는 의미이다. 이곳은 아무런 무늬(세호)가 없는 망주석이다.

(18)정령송

왕비 정순왕후의 능인 사릉에서 1999년에 모셔 온
한그루의 소나무이다. 장릉의 소나무는 사릉으로 모셨다. 생전에 생이별을 하신 두분이 혼백으로라도 소나무 뿌리가 되어 손이라도 잡으시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단종릉침과 정령송
https://youtu.be/6yfx9DMbB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