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충절의 고장, 문화도시 영월이야기

생육신 원호 유허비 및 관란정

여울가 2020. 9. 28. 21:37

★원호유허비 및 관란정
(元昊遺墟碑─觀瀾亭)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비와 정자.

문화재 지정충청북도 시도기념물 제92호건립시기1665년(헌종 5, 유허비), 1845년(헌종 11, 관란정)성격비, 정자유형유적소재지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분야예술·체육/건축

충청북도 기념물 제92호. 조선 초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원호(元昊)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과 정자이다. 유허비는 1665년(헌종 5)에 세웠으며, 관란정은 건평 4평의 누각으로 1845년(헌종 11)에 세운 것을 1941년에 개축하였다.

원호는 원주출신으로 문종 때 집현전직제학(集賢殿直提學)에 이르렀으나, 1453년(단종 1) 세조의 정변이 일어나자 향리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1457년(세조 3) 단종이 영월 청령포(淸泠浦)에 유배되자 송학면 서강가에 초막을 짓고 단을 마련하여 동쪽을 향해 비읍망배(悲泣望拜)하였다. 단종이 죽자 3년상을 치르고 나서 향리로 돌아가 다시 은거하였다.

손자 숙강(叔康)이 사관으로 있으면서 세조의 왕위찬탈을 직필하여 화를 당하자 자기의 저술을 모두 불태웠다. 1699년(숙종 25) 향리에 정려가 세워졌다. 1703년(숙종 29) 원천석(元天錫)의 사당에 배향되었으며, 이후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과 원주의 칠봉서원(七峰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인물지』(충청북도, 1982)



해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묻히게 되자, 생육신 중의 한 사람이었던 원호가 단종을 그리면서 서강가에 단을 세우고 아침저녁으로 눈물을 흘리며 영월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원호가 죽은 뒤, 그의 후손과 유학자들이 원호의 충의를 기리고자 헌종 11년(1845)에 비석과 정자를 세우고 그의 호에 따라 “관란정”이라 하였다.

원호의 호인 관란(觀瀾)이란 '흐르는 물을 따라 본다'라는 뜻이다.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 당시 원호도 이곳에서 기거하면서 손수 가꾼 채소와 과일을 박통에 담아 의복이나 채소 등을 단종께 보낼 때에는 먼저 풀잎에 글을 지어 함지에 담아 영월로 흐르는 서강에 띄워 청령포에 도달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관란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간결하게 짜여 있다. 이 건물은 1941년에 고쳐 지었고, 1970년과 1987년에도 다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생육신 관란 원호의 유허비
https://youtu.be/hYYl_bAX2Ds

 

 

 

 

 

 

 

 

 

 

 

 

 

 

 

 

 

 

 

 

 

 


#제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