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을 맞이하는 정자 요선정과 요선암
영월 10경 중 제 10경 신선을 맞이하는 정자, 요선정(邀僊亭)· 영월무릉리마애여래좌상(寧越武陵里磨崖如來坐像)
소개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면 도원운학로 13-39, 법흥천과 주천강이 합류하는 단일지역에 천연기념물, 문화재자료, 유형문화재가 있다.
요선정 앞 수십길 절벽아래에는 주천강 맑은 물이 흐르고, 강기슭 큰 반석위에는 요선암(邀仙岩)이라 새긴 각자(刻字)가 있는데 흐릿하여 보일 듯 말듯하다.
현재의 요선정이 세워진 자리는, 통일신라시대 도윤국사(道允國師)가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자산 기슭에 흥녕선원(興寧禪院)을 개원하고 이곳에 자주 와서 포교하던 곳으로, 주위에는 석탑과 마애불이 있어 당시에 암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징효대사’가 열반하였는데 1천여 개의 사리가 나와 불교와 인연이 깊은 장소이다.
1. 요선정(邀僊亭)
강원도지정(유적건조물 누정) 문화재자료 제41호
주천강이 굽이돌아 흐르는 무릉리와 도원리의 중심에 있다. 화강암반이 동산을 이루고 있는 언덕위에 있는 정자이다. 3단의 자연석 기단 위에 덤벙 주초를 놓고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둥근 기둥으로,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현판은 2점이 걸려있는데 ‘요선정(邀僊亭)’, ‘모성헌(慕聖軒)’이다.
邀僊亭(요선정)은, 선인(仙人·神仙)을 맞이하는 정자, (신선)맞이하여 춤추는 정자이고,
‘慕聖軒(모성헌)’은 ‘임금의 글을 받들어 모시는 집’이다.
건립내력은 무릉·도원리를 중심으로 살고 있던 원주 원씨 세하(元世夏), 원주 이씨 응호(李應鎬), 청풍 곽씨 태응(郭泰應) 3인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힘을 모으고 재물을 보태어 1913년에 건립하였다.
정자 안에는 淸虛樓重建記(청허루중건기), 邀仙亭記(요선정기), 重修記(중수기), 御製御筆(어제어필_숙종·영조·정조) 편액(扁額) 2점이 있다.
어제어필(御製御筆)은 주천 청허루(淸虛樓)에 있었는데 청허루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퇴락하여 붕괴되자 민가에서 보관하고 있었다.
이곳 3성(姓)과 주민들은 정자를 건립하고 어제어필을 봉안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진품은 영월군수장고에 영구보관중이다.
<영월군지 1992>, <영월지역의 누정과 충효각조사. 2004. 영월문화원>, <영월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1995.엄흥용>
2. 영월무릉리마애여래좌상 (寧越武陵里磨崖如來坐像)
시도유형문화재(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제74호
요선정 동쪽에 있는 커다란 둥글 바위에 새겨진 높이 3.5m의 마애불이다.
타원형의 얼굴에는 양감이 풍부하여 박진감이 넘치고 있고, 묵직한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간략한 옷 주름을 선으로 새기고 있다. 두 손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는데,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펴서 손등을 보이고 왼손은 오른손과 평행하게 들고 있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는 연꽃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진 머리광배와 2줄의 선으로 표현된 몸 광배를 갖추고 있다.
하체는 지나치게 크게 표현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잃고 있으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에는 연꽃무늬가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상체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박진감이 넘치지만 지나치게 커진 무릎이 불균형의 모습인데, 고려시대 영월지방의 대표적인 마애불상으로 보인다.<문화재청>.
3. 치악산의 시작점이자 끝자락인 요선정 터
요선정이 자리 잡고 있는 화강암동산의 지형을 관찰하여 보면, 법흥천 건너편에 「제명록기적비(題名錄記蹟碑)」가 세워져있는데, 암벽에 3충신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산 하고는 하나로 이뤄진 ‘치악산’이었다.
옛날에 큰 홍수가 나서 치악산 끝자락으로 물이 범람하면서 점차적으로 물길이 변경되어 치악산과는 분리되어 작은 산이 되었는데, 양쪽으로 형성된 물길의 중심에 있는 동산이 되었다.
법흥천이 흘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구하도’는 현재 ‘요선정’으로 들어서는 길이다.
1457년 당시에 관란 원호, 도촌 이수형, 어계 조려 3인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상왕노산(단종)의 안위를 걱정하던 장소는, ‘요선정’이 자리 잡은 터 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김원식. 영월군 지질·문화해설사>
4. 나도 신선이 되는 요선암(邀仙岩)
옛날 옛날에 마을 주민들이 신선을 만났기에, 잊지 않으려고 큼직한 둥글바위 토르(tor)에 신선(神仙)을 새겨놓고 요선암(邀仙岩)이라 하였다.
바위에 모셔진 신선은 오시는 분을 맞이하기 위해 계시기에, ‘요선암’을 찾아가는 분이 곧 신선이다. <[논문]영월 무릉`도원리, 지명의 근원에 대한 고찰. 2016. 김원식>
★탐방안내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도원운학로 13-39, 무릉리 요선암 일원에는 다양한 문화 유적과 자연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자연환경과 역사탐방의 명소이다.
주차장에서 포장된 길을 따라 걸으면 작은 암자를 만난다. 암자를 중심으로 마당을 지나 강으로 향하면 강바닥 가득 기기묘묘한 형상의 「요선암 돌개구멍」이 있다.
암자의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산길을 오르게 되는데 잘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마애석불과 요선정자의 경이로운 모습에 옷깃을 여미면서 예를 갖추게 된다.
마애불상 뒤편에 가면 너럭바위의 갈라진 틈에 뿌리내린 천년송이 한그루 있는데 시들지 않는 생(生)과 삶을 가늠할 수 있다.
수십 여길 절벽 아래에는 주천강 맑은 물이 흐르고, 강바닥 넓게 자리 잡은 너럭바위에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물과 바람, 돌과 자갈, 모래와 물결이 빚어낸 비경이 한눈에 보여, 이른 아침 물안개 피어난 풍경은 선경에 다다른 듯 감흥을 더해준다.
⑴ 요선정 앞마당 자연석에 새겨진
‘丁巳年 石明瑄(정사년·1919년 석명선)’
1919년에 영월군 군수이었다. 1919년 4월 19일 주천면 금마리에서는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현장에 도착하였다가 주민들에게 둘러싸여 만세연명부에 서명한 후 주민들과 함께 강제로 ‘대한독립만세!’ 삼창을 한 인물이다.
<3.1운동 재판기록 제4편 강원도 금마리만세운동사>에서는,
일제 강점기이었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시행했던 만세운동과, 앞장서고 동참했던 백성들의 고난과 아픔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2) 요선정청석탑(군지정문화유적)
요선정 옆, 마애여래좌상의 앞에 있는 탑으로 현재 4층의 옥개석만 남아 있다. 옥개석은 원래 모양으로 석재는 청석이다.
기단석은 120×120cm의 방형으로 현 지표상 20cm 높이의 기단석상면에는 호형 2단의 괴임이 있으며, 그 위에 우주와 주를 각출한 면석이 있다.
갑석은 두께 20cm, 갑석면 두께 8cm로 상면을 호형으로 깎아 처리하였다.
갑석은 일변 84cm이고 호형 일변은 64cm로 만들었다.
이것은 주천면 삼층석탑의 갑석과 같은 모양인데, 주천면의 탑과 비교해 볼 때 이 탑의 갑석이 뒤집혀 높인 것 같다. 그 위에는 점판암으로된 옥개석 4개와 탑신석이 4개 있는데, 옥개석에는 락수면이 뚜렷하지 않으며, 옥개받침은 2단으로 아주 얕게 표현하였다.
탑신은 우주없이 원문에 범자를 한자씩 새긴 것을 각면에 각각 3개씩 조각하였다. 각 탑신의 하단에는 시멘트를 덧대어 높게 만들었다.
내가 신선이 되는 곳, 요선정과 요선암
https://youtu.be/XfLifWjl0fQ
#영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