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런 그리스도인/한국124위 순교복자 열전

124위 복자 열전(73), 김강이 시몬

여울가 2017. 6. 26. 21:32

73. 김강이 시몬

 

 '여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김강이(시몬, ?~1815)는

충청도 서산 중인 집안 츨신으로 장성한 후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재산이 많았으나 입교 후에 다 버리고 고향을 떠나

동생 김창귀(타대오) 가족과 함께 전라도 고산 땅에 가서 살았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지도층 신자로 지목돼 1년 동안 피신 다녀야 했다.

 박해가 끝난 후 등짐장사를 하면서

이곳저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경상도 진보 머루산(현 경북 영양군 석포면 포산동)으로 들어가

 교우촌을 일궜다. 이후 다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강원도 울진에 정착했다.


 1815년 을해박해가 일어나자 김강이는 옛 하인의 밀고로

 아우 김창귀와 조카 김사건(안드레아)과 함께 체포돼 안동에 수감됐다.

여러차례 문초에도 꿋꿋하게 신앙을 고백한 그는

다시 원주로 이송됐다.

온갖 문초와 형벌에도 굴하지 않자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미 형벌로 인한 상처가 심한 데다가 이질까지 앓고 있어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는 상태가 돼 끝내 옥사하고 말았다.

 1815년 12월 5일(음력 11월 5일)로, 그의 나이는 50살이 넘었다.

 

                                                          1815년 경상도에서 을해박해가 일어나자 김강이가

                                                       하인의 밀고로 체포되고 있다. [그림: 탁희성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