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런 그리스도인/한국124위 순교복자 열전

124위 복자 열전(90), 이일언 욥

여울가 2017. 6. 27. 15:17

 제90위 이일언 욥


 

제90위 이일언 욥(李日彦 Job)

축일 : 5월 29일

성인구분 : 복자

신분 : 순교자

활동연도 : 1767-1839년

같은이름 : 이 욥, 이욥

 

충청도 홍주의 대벌 마을에서 태어난 이일언(李日彦) 욥은,

1801년 이전에 아버지 점손(占孫)에게서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의 관명(冠名)은 태문(太文)이었다.

 

이 욥은 1801년의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경상도 안의로 유배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관장의 눈 밖에 나서 다시 옥에 갇혔고,

 물도 얻어먹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하였다.

10년을 갇혀 있는 동안 그는 갖은 모욕과 학대를 받았으나,

묵묵히 참고 따름으로써 참다운 신자의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는 관장의 허락 아래 개인 집에서 연금 생활을 하게 되었다.

 

1815년부터 이 욥은 안의로 찾아온 아내와 함께 생활하였다.

 1826년 5월에는 연금에서 풀려나 전라도 임실의 대판이라는 곳으로 이주하였으며,

 여기서 그는 교리를 실천하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노력하였다.

 

이듬해 정해박해가 일어나자 이 욥의 아내는 그에게 피신을 권유하였으나,

그는 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전에 순교하지 못한 것이 분해 죽겠다.

그런데 지금은 이처럼 궁벽한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천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가 없으니 기막힌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탄식하였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을 때에 전주 포졸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이 욥을 체포하였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바라던 뜻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따라나섰다.

 

전주 관장은 이 욥을 처음 문초하는 과정에서

그의 전력을 알아내고는 혹독하게 매질을 시켰다.

그는 비록 키가 작고 몸집도 보잘것없었지만,

신앙의 인내로 형벌을 참아 내 보는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곳에 있던 박해자들은 “우리가 그의 외모를 보고 잘못 판단했군.

 이 사람은 정말 천주교인들의 두목이 분명하이.”라고 수군거렸다.

 

문초와 형벌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지만, 이 욥의 신앙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러자 관장은 사형 선고를 내린 다음 그를 옥에 가두어 두도록 하였다.

 

이후, 이일언 욥은 김대권 베드로 등과 함께 12년 동안을

 전주 옥에서 생활해야만 하였다.

그동안 그는 세 번이나 자신의 사형 선고문에 서명을 하면서 한결같이 목숨 건지기를 거부하였다.

 그러다가 1839년의 기해박해 때, 임금의 명으로

전주 장터(숲정이)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39년 5월 29일(음력 4월 17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72세였다.

 

처형 장소로 가는 동안, 이일언 욥은 자식들이 울면서 따라오자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옥중에서 신음해 오다가 오늘 마침내 천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왜들 우느냐? 오히려 나의 행운을 기뻐하여라.

너희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을 기뻐하고, 너희들도 훌륭한 교우가 되거라.”

 

이일언 욥은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이일언 욥은 키가 작고 몸집도 보잘 것 없었지만 믿음의 인내로

모진 형벌을 꿋꿋이 참아 받았다. [그림: 탁희성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