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서/2018 캐나다

꿈에 그리던 퀘백

여울가 2018. 10. 12. 15:30

여행 7일차 2018.10.2

 

#꿈에 그리던 퀘백

 

드라마 '도깨비'를 열심히 봤었던 나는

언제 저 아름다운 퀘백에 가 볼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이번 여행에 가장 기대를 하고 간 곳이

퀘백이다.

 

그러나 버스의 장거리 운행제의 시간 제한으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데다가 시간을 많이

차지하는 옵션을 두개나 하는 바람에 정작 퀘백은

수박 겉핥기 식의 짧은 여행이 되고 말았다.

퀘백 주 의사당은 버스로 지나는 길에

스치듯 보았는데 다행히 오른쪽 좌석에 앉았었기에 볼 수가 있었다.

 

퀘백은 그냥 프랑스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였고, 사용하는 언어도 불어라고...

그리고 캔다 국기 대신 퀘백주기를 내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퀘백의 랜드마크인 샤또 프롱트낙 호텔에 버스를 내려주고 가이드는 10분의 시간을 줬다.

 

맨 뒷자리에 앉은 우리는 일행 46명이 모두 내리는데 최소한3~4분이 걸렸으니

사진 찍느라고 광장을 뛰고 또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으려고 또

뛰고...미치는 줄 알았다.

 

샤또 프롱트낙 호텔 앞에는

1608년에 퀘백시티의 기초를 세운

사무엘 드 샹플랭의 동상이 서 있다.

 

1분도 늦으면 안된다는 협박(?)의 가이드

눈치를 보며 사진 찍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예뻐도 너무 예쁜 퀘백 골목, 골목이

눈에 밟힌다.

시가지 아래로 내려와서 버스 탑승할 장소를

알려준 후 40분의 자유시간을 줬는데 그 시간에

도깨비 문도 보고,크리스마스샵도 보고, 로얄광장의 루이 14세 동상과

승리의 노트르담성당도 보고...

 

400년 전에 5층 건물 벽면에 프랑스와 캐나다

화가 12명이 그렸다는 프레스코화에서 사진도

찍었다. 이 프레스코화에는 실존 인물 16명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서 예쁜 찻집에 앉아

커피라도 한잔 마실 여유가 있었음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 가득 안고 기나긴 하루의 마무리는

캐나다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가는 길...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

 

#퀘백

 

몬트리올 북동쪽 240㎞ 지점, 세인트로렌스 강과 세인트찰스 강의 합류지점에 있다.

이 지역에 도달한 최초의 유럽인은 프랑스의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로서,

1535년 이곳의 스태더코나에서 휴런 인디언 마을을 발견했다.

 

1608년 사뮈엘 드 샹플랭이 이 지역에 세운 캐나다 최초의 영구기지는

모피 교역기지로 발전했다. 1629년 영국인이 이곳을 점령했으나

1632년 생제르맹앙레 조약으로 프랑스가 다시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후 급속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1690년 매사추세츠 주지사인 윌리엄 핍스 경의 함대가 이곳을 점령하려 했지만,

이곳의 주지사인 프롱트나크 백작이 이끄는 군대에 패해 물러났다.

1711년 영국 함대가 또다시 공격을 했지만 이곳에 도달하기도 전에

 세인트로렌스 강 연안에서 격퇴되어 실패했다.

 

1759년 영국이 시를 함락시켰고, 1763년 파리 조약에 따라 공식적으로 지배권을 얻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리처드 몽고메리와 베니딕트 아널드가 이끄는

미국인들이 시를 점령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1791년 시는 퀘벡 주의 전신인 로어캐나다 주의 주도가 되었고,

1840년 실질적인 인가를 받았다. 1864년 북아메리카 영국 식민지회의가 이곳에서 열려

캐나다 연방계획이 구체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이 유럽 침략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이곳에서 2차례 회합한 바 있다.

 

퀘벡 시가 캐나다의 주요항구이지만, 시민의 대부분은 서비스업과 행정업무에 종사한다.

신문 인쇄, 제분, 담배·의류 등의 제조업이 발달해 있고,

조선업과 관광업도 중요하다. 주민 대다수가 로마 가톨릭교도이며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시의 학교제도는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를 위해 이원화되어 있는데,

각각 프랑스어와 영어로 교육한다.

 라발대학교와 대학 부속교육기관이 시문화를 주도한다.

연주회장인 그랜드 극장과 시 전체에 분포하는 많은 박물관·도서관 등도 유명하다.

 

역사적인 건물들은 대다수가 17세기의 건물들로 대개 종교적인 기능을 지녔으며,

특히 플라스루아얄에 있는 기품있는 승리의 교회인 노트르담데빅투아르 교회(1688)가 유명하다.

 

그밖에 위르쉴린 수도원, 신학교, 캐나다 최초의 영국성공회 교회,

여러 명의 퀘벡 주교가 묻혀 있는 가톨릭 성당 등도 중요한 역사적인 건물들이다.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