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가톨릭 성지순례(국내)

[경남/밀양]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터, 명례성지

여울가 2015. 1. 8. 09:09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터,명례 성지...

 

낙동강을 구비구비 따라서 달리다 보면

창원과 밀양을 연결하는 다리 두개, 수산교와 수산대교가 있다.

그 다리를 건너서 딸기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로

가득한 농로를 지나면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명례성당에 도착한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진 성당과

수백년은 됐음직한 커다란 나무가 언덕배기 높은

곳에서 순례자를 어서 오라고 반겨준다.

수녀님 두분도 우릴 반겨 주시고,

우린 놀라운 경치에 입을 다물 지 못했다.

벽을 향하고 있는 제대와 남녀를 가로막으로 막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산교구의 영적 고향이며 신앙의 원천인 명례는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양과 김해를 잇는 나루가 있던 곳이다.

명례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가 출생한 곳이며,

오래된 교우촌으로 1897년 영남 지방의 네 번째 본당이자

마산교구의 첫 번째 본당이 설립된 곳이다.

또한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세 번째 방인사제인

강성삼 신부가 초대주임으로 사목하다 돌아가신 곳이기도 하다.

 

순교자 신석복 마르코는 1828년 밀양의 명례에서 태어나

누룩과 소금행상을 하며 살았다.

낙동강을 건너는 명례 나루터에는 일찍부터 박해를 피해온 신자들이 정착했고,

그들로부터 신앙을 전해 받은 듯하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장사하러 갔다 오던 중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밀양으로 압송되었고,

대구로 끌려가서 배교를 강요당하며 혹형을 받은 뒤 3월 31일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 후 순교자의 아들이 대구로 가서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부친의 유해를 찾아왔지만 지방 유지들과 신씨 문중의 반대로 고향 땅에 안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 낙동강 건너 한림정 뒷산 노루목에 안장했고,

1975년 12월 진영 본당 신자들에 의해 본당 공원묘역으로 이장되었다.

 

마산교구는 2008년 신석복 순교자의 생가 인근에 있는 명례 성당을

성역화하기 위해 위원회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현 성당은 강성삼 신부가 1898년에 처음 지은 후

1928년 권영조 신부 때 기와로 다시 지어 축복식을 가진 성당이

1935년 태풍으로 전파된 후 1938년에 무너진 자리에 축소 복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