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학교에 갔다가 처음보는 건물을 발견하였다.
정동극장 뒤편에 있는 중명전...
그냥 비어있는 건물 같기도 하고 멀리서 바라보고
발길을 돌렸다.
위키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중명전은 원래 정동 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다.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A.I. Sabatin)이 하였다.
1904년 경운궁 대 화재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 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이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도 중명전이다. 일제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 황제를 강제 퇴위시켰다.
1915년 일제가 경운궁을 축소 훼손하면서
경성구락부(Seoul Club)에 임대되었고[1],
1925년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소실된 뒤 다시 재건하여
외국인을 위한 사교 클럽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광복 이후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유재산으로 편입되었다가,
1963년 박정희대통령은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중명전을 돌려주었다.
1977년 중명전은 다시 민간에 매각되었는데 관리 소홀과 개조로
원형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198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03년 정동극장에서 매입한 뒤 2006년 문화재청에 관리 전환하여,
제2007년 2월 7일 사적 제124호로 덕수궁에 편입되었다.
2009년 12월 복원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전시관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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