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백성공동체 종신서원자 상반기 교육(1)
조금 전 우리 모두가 이주민이라는
김평안신부님 말씀에 제 자신이 이주민 생활을 체험했었기에 많은 공감이 간다.
저는 크리스쳔으로서 공동체를 살아가는 현지인들과 생활을 했었기에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차별도 없었고, 불평등한 일을 당한 적도 없었다. 너무도 평안하게 지냈었던 그 시절이 조목조목 생각났다.
그분들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사는 분들이었기에 아마도 저를 이방인이라기보다는 형제로 대했던 것 같다.
지난 토요일 새천년복음화연구소의 포럼이 있었다. 이북을 27번 다녀온 연세대 인요한교수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앞으로 탈북자들을 대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것인가?
그들을 사랑으로, 그리고 우리와 같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하느님백성공동체가 추구하는 목표가 바로 복음화이다. 아까 신부님이 교황님의 담화문을 말씀하셨는데복음화는 자기가 사는 그 자리에서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파하는 것이 복음화이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삶이다. 우리가 사는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드러내자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화학교라는 제자학교를 통해서 공부를 하고, 하느님백성공동체에 입회한 사람들이다.
복음화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무엇입니까?
1단계 첫시간에 '신앙은 관념이 아니고 생활이다.'라는것을 배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의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사랑의 사람이 되려고 구체적인 증거의 삶을 실천하려고 공동체에 입회한 사람들이다. 그리스도를 실천적으로 드러내고 살겠다는 서약을 하고 입회한 사람들이다.
복음화학교라는 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구체화시켜서 실천하며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다.
여러분들 안에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열매를 맺었는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이 일을 감당할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아닐까?'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사랑의 사람이 되는 훈련을 받은 우리가 바로 그런 일을 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느님백성공동체 회원 중에서도 여러분은 종신서원을 한 사람들이고,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느님과 한 사람들이다.
죽을 때까지 아니 목슴을 내 놓고서라도 사랑을 실천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명사가 아니고 동사이다.
평신도의 자발적인 출발로 이루어진 우리 공동체는 나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 자체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고 따라가야 한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는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왜? 많은 사람들이 그분 주위에 그렇게 몰려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 매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끌리는
뭔가가 있어야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 스스로에게 자문을 해 보자.
나는 어떤 매력이 있는 사람인가?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인가?
사람들이 내게 다가 오는 그런 매력을 갖고 있는가? 자문을 해 보자.
하느님의 사랑은 보편적인 사랑이다. 하느님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을 갖고 하느님의 방법과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지혜, 방법, 하느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표출되는가?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존재가 어떤 모습으로든지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남들이 그렇게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랑이 자기만의 착각이다.
보편적사랑은 어느 누구에게나 똑같은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이 보편적 사랑은 아시아, 세계 복음화 사업을 하는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사랑이다. 누가 봐도 하느님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야만 사랑의 사람인 것이다. 사랑의 사람은 꾸준해야 하고,
변하지 않아야 한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만 한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 특히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내 주관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에수님이, 성령이 함께 하심이 드러나는지, 드러나지 않는지 자신을 들여다 봐야한다.
하느님백성공동체가 갖고 있는 사상을 공유하고 함께 가겠다고 서약을 한 것이다.
여러분은 세상안에서 하느님백성공동체로
이주를 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주민등록은 옮기지 않고 몸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한국에 평신도에 의해서 분명한 목표와 영성을 갖고 자발적으로 생겨난 공동체이다.
순수한 한국형 공동체인데 2017년이면 25년이 된다.우리는 그동안 참으로 엄청난 큰 일을 해냈다.
신자들 사이에 '복음화'라는 단어를 인식시켜준 것이 우리들이다. 이제는 복음화가 교회가 갖고 있는 중심 단어가 되었다. 복음화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전환적인 삶의 변화, 그리스도와의 만남 등 많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 변한 사람들 중에 여러분도 해당된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시작했다.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이런 구속과 속박의 공동체 안에서
어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경험했는지 돌아보시기 바란다. 그 많은 일들이 불과 25년만에 이루어졌고 그 중심 자리에 여러분들이 있었다.
여러분 스스로가 박수를 받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생활을 10년 넘게 한 종신서원한 여러분을 정말 존경하고 사랑한다. 어떤 직분도 없이 10년 이상 봉사로 살아온 삶 자체는 특별한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리라 본다.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하는 봉사는 세상에서 말하는 봉사와는 좀 다르다. 그것보다 더 나아가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것이 그리스도적 봉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사랑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까이 가면 상처받고, 찔릴 것 같은 사람에겐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게 가시가 있거나 모난 부분이 있다면 모난 부분을 정화시키는 작업을 끊임없이 해야만이 봉사자로 쓰임을 받을 수 있다. 사랑받는 것과 도구로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차이가 있다.
하느님백성공동체 종신서원자 상반기교육(2)
예수님이 제자를 뽑으실 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겠지만 왜 12제자를 뽑았을까?
한 사람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이스라엘은 12세이면 다른 사람과 토론할 수 있는 자격이 되고 30세이면 자기의 생각을 설파할 수 있는 나이로 인정을 한다.
요즘에 회사 취직을 하려면 똑똑하고 외모도 괜찮고 학력도 좋고..이런 등등을 고려하여 뽑을 것이다.
이런 세상적인 조건과 예수님의 제자 선발 기준은 전혀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증거하기 위해 12제자를 뽑으셨는데 아주 평범하고 별볼일없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았다.
그 별볼일 없는 제자들이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지고 있다.
다음으로 성모님을 한번 살펴보자
왜 하필 마리아였을까?
사실은 이 모두가 다 연결이 되어져 있다.
복음화의 모델이신 성모님은 어떤 모습이 모범이 되셨나?
첫째,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가장 으뜸이다.
현재 우리는 당시의 사람들보다 훨씬 정보가 많아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2천년 전 당시의 하느님관은 어땠을까?
절대자요,창조주요,유일신임을 그들의 삶 속에서 경험되어지고 체험한,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하느님을 실제적으로 경험되어진 바탕에서 이루어진 신관이다.
그러한 시대에 가브리엘 대천사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여라, 네가 아들을 낳을 텐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는 말에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그 말씀이 제게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고 대답하였다.
마리아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이미 체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다양한 반응을 할 수 있었는데도, 돌을 맞아서 죽어야 할 운명에 처했는데도 바로 순명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다.
성경에 마리아를 언급하는 부분을 보면 12살 때 성전에서 토론하는 예수님,
가나안의 혼인잔치 때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짐을 말할 때,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를 때...
이런 일들을 묵묵히 마음에 새겼다.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과 신뢰가 깔려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리아가 보여준 것은 순명은 물론이고 응답하는 모습, 즉 순응 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다.
순응은 예, 하고 다시 응답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근본적인 믿음의 뿌리가 약하여 성령께 의탁하고 이끌려가지 못한다.
저는 성령이 삶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끊임없이 느끼고 성령께 모든걸 의탁하고 기도하며 살아왔다.
주님을 믿고 의탁하고 내 계산대로 살지않고 하느님이 하라시면 그것이 어떤 일이든지 저는 그 일을 하며 살아왔다.
그분께 온전히 의탁하고 이끌려 왔기에 오늘날 여기까지 왔고, 그분의 뜻에 이끌려서 살면 반드시 저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오늘처럼 종신서원자 교육이 있는 날인데 다른 일과 겹쳤을 때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자기에게 최고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자신의 삶의 우선 순위를 하느님의 뜻 실천을 우선 순위로 두고 사시는 분이다.
내가 나의 주인인지? 주님이 나의 주인인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란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종신서약 회원 여러분...
내가 죽을 때까지 하느님의 뜻대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 그리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축원한다.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있다면 분명히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있다면 분명히 하느님께 영광드리는 날이 올거라 믿는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비우기보다는 더 가질려고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참 예뻐하셨다.
어린 아이 때는 부모님 말씀을 완전히 믿고,
뭘 할 때도 반드시 부모님께 물어본다.
그러나 현재 신자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새로운 입맛을 찾아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성모님이 보여주신 믿음, 순명, 겸손과 사랑을 우리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
제가 '겸손은 진리를 묵묵히 실천하는 것이다.' 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된 배경은 돌아가신 제 선친께서 살아 생전에 딱 한가지 해 주셨던 말이 바로 겸손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뭘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정말 겸손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았다.
겸손한 사람들은 말 수가 적고,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대놓고 당신이 겸손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진리를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 겸손이다. 인류공동체를 위해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면서 하느님의 충직한 종으로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을 하셨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웃에게 관심을보이지 않는 무관심과 주인의식이 결여되어 잇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손을 내밀고, 남을 배려하고,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말씀을 끊임없이 듣고 충전을 해야한다.말씀이 내 안에서 주인이 된다면, 그것이 진리를 묵묵히 실천하는 길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일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길이다. 우리는 스스로 나선 사람들이다. 꾀 부리지 말고, 몸 사리거나 머리를 굴리지 말고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
<정치우안드레아 복음화학교 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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