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장릉
(4)재실(齋室)
영월 장릉의 최초 건립은 1585년이다.
임금의 명을 받은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향축봉안관 등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집으로 바깥세상에서 겪은 일들이 많아 격한 감정을 다스려 비워내기 위하여 21일 전에 입실을 했다.
능역의 관리 및 수호를 위해 참봉1인, 수호군 9명을 배치하였다.
건물의 구성은 재실,전사청,향대청 등이 있다.
선조18년(1585)에 처음 건립되었고 1932년에 중건한 이후 여러 차례 보수`유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향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하는 창고에는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 보관되어 있으므로 눈 한번 깜빡이지 말고 잘 지켜다오.'라는 뜻으로 물고기 형상의 자물쇠를 사용하였다.
옛날 여인네들의 비밀 반짓고리에 달려있던 잉어의 그림도 그 의미가 같은 것이다.
재실 앞마당에는 최초 건립 시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향나무가 있다. 수령은 약 430년 정도 되었을 것으로 본다.
향나무는 산사람보다는 죽은 혼을 위한 나무이다.
향나무가 있는 5리 이내에 있는 모든 과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 특성이 있어서 원래 집안에는 심지 않는다.
향나무가 있는 곳은 사당이나 묘소이며, 날짐승이 날아들지 못하도록 우물 옆에도 심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거의 신목으로 여기고 학교나 관공서에 향나무를 많이 심었다.
향나무 잎은 촘촘하여 새가 날아들지 못하고
독성이 있어 해충이 가까이 오지 못한다.
(5)엄흥도정려문(嚴興道旌閭門)
1726년(영조 2년)에 어명으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는 정려문(旌閭門)이다.
비각 안에는 정려문과 정려비(旌閭碑)가 있는데, 정려비 뒷면에는 정조 15년(1791)에 강원관찰사 윤사국의 '엄호장정충사적비음기(嚴戶長旌忠事蹟碑陰記)'가 새겨져있다.
*嚴戶長旌閭碑錄(호장 엄흥도 정여 기록)
국역 장릉사보 잡철(雜綴, 317~318쪽)
英宗己卯, 建棹楔于嚴興道之閭, 未詳其舊里, 將竪于府治, 忽有虹起役處, 垂于陵外, 若導人告之所也, 就虹所垂而門焉 [嚴戶長旌閭碑]
영종기묘, 건도설우엄흥도지여, 미상기구리, 장수우부치, 홀유홍기역로, 수우능외, 야도인고지소야, 취홍소수이문언 [엄호장정여비]
영조 기묘(영조35년 1759년)에 엄흥도 마을에 도설(棹楔:정려)을 건립하는데 그 마을이 어딘지
알 수 없어 부치(府治:고을)에 세우려고 하였다.
그런데 무지개가 일하던 곳에서 홀연히 일어나 능 밖으로 뻗어나가니 마치 사람에게 그 장소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무지개가 드리워진 곳으로 가서 정문(旌門)을 세웠다.[엄호장정려비]
영월 장릉 재실, 엄흥도 정려비
https://youtu.be/sb4au8u1IgQ
'여행길에서 > 충절의 고장, 문화도시 영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장릉-장능비,정자각,소전대 (0) | 2020.09.11 |
---|---|
영월장릉-장판옥,배식단,홍살문,배위 (0) | 2020.09.11 |
영월장릉-하마비,배견정,낙촌비각 (0) | 2020.09.11 |
금강공원의 유적 탐방(향교, 비석군, 금강정, 민충사,낙화암) (0) | 2020.09.11 |
삼옥2리 정의영의 처 이씨 열녀문 (0) | 2020.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