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9년(640) 자장율사가 세웠다는 설과
신라의 승려 무선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웠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신라말부터 고려 전기까지 폐사되었던 절로
고려 명종 2년(1172) 보조국사가 절을 다시 세웠으나
임진왜란 뒤 60년 동안 다시 폐사되었다.
훗날 조선 효종 2년(1651)에 각순대사가 대웅전·영산전·대적광전 등을 고쳐 지었다고 한다.
공주 마곡사(麻谷寺)의 포교당에 있는 조선시대의 범종이다.
마곡사는 「태화산 마곡사 사적 입안(泰華山 麻谷寺 事蹟 立案)」에 따르면 640년(신라 선덕여왕 9)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고,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에 의해 중건되었다.
마곡사 포교당 범종은 신라이래의 전형적인 종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좋고 문양의 표현도 매우 사실적이다.
종신(鐘身)의 꼭대기에는 등을 크게 구부리고 있는 한 마리의 용이 종신을 들어 올리는 모양의 용누(龍鈕)가 있는데,
용의 꼬리는 음통(音筒)을 휘감고 있다.
종신의 상대(上帶)에는 국화문양을, 종구(鐘口) 끝부분의 하대(下帶)에는 연화문(蓮花紋)을 장식하였다.
종신의 어깨 4곳에는 사각형의 유곽(乳廓)을 배치하고,
각 유곽의 테두리에는 당초문을 둘렀다. 그 안으로는 유좌(乳座)와 유두(乳頭)를 장식하였다.
유좌는 5엽의 꽃판으로 연밥모양의 낮은 돌기를 두었다.
유곽 사이에는 몸을 왼쪽으로 튼 채 둥근 머리광배에 구름대좌를 딛고 서서 연꽃가지를 들고 있는
제석천(帝釋天) 또는 범천(梵天)으로 추정되는 보살상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유려한 선을 사용하여 세련미가 돋보인다.
종신의 하단에는 주종기(鑄鐘記)가 있어 “건륭육년신유팔월(乾隆六年辛酉八月)”,
즉 조선 영조 17년(1741)에 종을 조성하였다는 사실과 조성한 장인, 시주자 명단을 알 수 있다.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대광보전”
옛날에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가 있었다.
그의 소원은 한순간이라도 좋으니 일어서서 걷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는 마곡사 대광보전에 가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 제발 저에게 한번만이라도 걸을 수 있도록 가피(加被. 부처나 보살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에게 힘을 줌)를 내려주십시오”
그리고 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기도를 올리고 남는 시간에는 대광보전에 깔 삿자리를 정성스레 엮어나갔다.
석달 동안 일심으로 기도를 한 그는 어느새 자신이 얼마나 염치없는 욕심을 부렸는지 깨달아가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죄가 많았는지 이제 기도를 통해 알게 되었구나!’
그는 그때부터 걷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삿자리를 짜는 것을 수행으로 삼게 되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작은 풀 한포기, 들꽃 한송이가 더 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100일째 되는 날, 그는 대광보전에서 삿자리의 마지막 부분 손질을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가 자연스레 걷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제야 자신의 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부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했다.
마곡사 대광보전에 내려오는 이 이야기는 얼마전까지 실제로 있었던 삿자리에 얽힌 전설이었으나
새로 대광보전의 내부공사를 하면서 삿자리는 사라져 버렸고 전설만이 남아있다.
절마당에 우뚝 서 있는 5층 석탑은 탑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부처, 보살 등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하다.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을 가리키는데
이 법당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약사여래불·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17세기 이후 우리나라 불상의 형식으로 정착하는 석가, 아미타, 약사불의 삼세불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의 석가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아미타, 왼쪽에 약사불이 안치되어 있다.
중앙에 위치한 석가불은 항마촉지인의 수인에 왼손은 무릎에서 수평으로 뉘어
2지와 3지를 거의 직각에 가깝게 구부렸다.
아미타여래상은 중품하생인, 약사불은 반대의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하였으나
약함은 놓여 있지 않다.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를 둥글게 덮은 변형식의 편단우견을 입었으며,
양쪽의 여래상들은 속에 편삼을 입은 모습이다.
세 여래상은 착의법과 수인형식을 제외하면 거의 비슷한 형상인데
전체적으로 얼굴이 작고 신체의 비례가 짧은 작고 단정한 모습이다.
양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한 번씩 반전되어 접혀져 내려오면서
대의의 끝단을 둥글게 처리한 점이나 양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주름들이 가파른 속도감을 보이면서
양측으로 접혀져 흘러내린 모습, 왼쪽 무릎에 유난히 크게 표현된 소매자락 등이 특징적이다.
머리의 육계는 밋밋하며 중간계주와 정상계주는 따로 만들어 끼워 넣었다.
얼굴은 둥글고 작으며 거의 일자에 가깝게 처리된 얇은 입술이나 구부린 손가락의 표현 등은
같은 시기 다른 불상에 비해 부드러우면서도 사실적이다.
이 불상과 관련된 복장물은 아직 조사된 바 없어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불상이 안치된 대웅보전은 각순(覺淳)대사와 공주목사 이주연(李奏淵)이
1651년에 중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이 시기인 1650~1659년 사이에 마곡사 주지를 지낸 운혜(雲惠)는 당시 유명한 조각장인으로
「사적기」에는 그가 편수를 맡았다는 기록도 있어 이 불사에 총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삼세불상은 17세기 중엽에 조성된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상은 17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보이면서도 둥글고 작은 얼굴에 짧은 비례라든지
주름의 폭이 넓으면서 그 끝단을 부드럽게 둥글게 처리한 점, 그리고 왼쪽 무릎 위에 유난히 크게 표현된 소매자락 등은
같은 시기 다른 불상과는 다른 점이다.
17세기 삼세불상을 대표하는 목조삼세불상 가운데 하나로 조형적으로 우수하고 연구가치도 높다
이 대웅보전은 조선시대 각순대사가 절을 다시 일으킬 때(1651) 고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규모는 1층이 앞면 5칸·옆면 4칸, 2층이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 위에 연꽃을 조각해 놓아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
건물 2층에 걸려 있는 현판은 신라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한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井)자 형태로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천장을 2층 대들보와 연결하여 만들었고
마루도 널찍해 공간구성이 시원해 보인다. 조선 중기 2층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김구선생이 심었던 마곡사 향나무”
마곡사는 구한말 독립운동을 하던 김구선생이 피신하였던 사찰로 유명하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장교를 죽이고, 일경에 붙잡혔다.
옥살이를 하던 중 형무소를 탈출하여 마곡사에 숨어들었고 그곳에서 출가하였다.
그러나 마곡사에도 일제의 감시망이 덮쳐오자 김구선생은 상해로 발길을 향했다.
해방을 맞아 다시 마곡사를 찾은선생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절 마당에 향나무 한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오층석탑 옆에 그가 심은 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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