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충절의 고장, 문화도시 영월이야기

영월장릉-수라간,영천,느릅나무

여울가 2020. 9. 11. 16:49

#영월장릉

(14)수라간
‘수라간(水刺間)’의 수라는 원래 몽고어로써
탕미(湯味)을 뜻하는데 수라를 짓는 주방을 의미한다.

이곳 수라간은 광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제향시 만든 음식을 보관하는 곳이다.

(15)영천
이 영천은 장릉 서쪽에 있는 우물로써 정조15년(1791년) 10월에 어명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이 수축하여 한식때 제사지내는 용도의 우물로 사용하였다.
보통때는 조금씩 샘물이 솟았으나
매년 한식때 제향을 지낼 때에는 맑은 물이 많이 용출하여

신령스러운 물이라는 뜻으로 영천이라고 불렀다.

우물의 깊이는 1.5m이며 하부는 화강석 돌담으로 둥글게 쌓여 있고 상부는 정방형이다.

왼쪽의 둥근 것은 하늘,오른쪽 우물의 네모진 것은
땅을 나타낸 것이다. (천원지방,天圓地方)
천.지.인 사상에 의하면 물은 생명이다.
샘물이 솟아남은 살아있는 생(탄생)이고
죽어서 관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감은 몰(죽음)이다.
망자의 관자리는 사각형이고, 그 묘지의 봉분은
둥글게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엣 어른들은 물 한바가지를 얻기 위해
절을 한번 올린 후 물 한바가지를 떠서
하늘에 먼저 드리고,
다시 물을 떠서 예를 갖추어 절을 한 후에
제향에 사용하였다.

정조 대왕 15년 때인 1791년에 왕명으로 좌부승지 서영보가 '영천립석기'를 지었고,

박기정 영월부사가 그 기문을 받아 영천비 뒤쪽에 새겨넣었다.
그 내용은 상왕께서 동쪽으로 오신 이래로 환궁하 못하셨다.

(아무리 어리석은 백성일지라도 울음을 삼키며 눈물을 머금지 않은 자가 없다.)
만백성의 슬픔은 샘물되어 솟아 올랐다.
(세월이 흘러 잘못을 바로잡아 원통함을 씻어내고
신령스런 감응을 부르며 조화로운 기운을 소통시킨 뒤에야 비로소 범상한 자취가 남김없이 나타났다.)

숙종 때 복위 되셨으니 기쁨의 눈물이 또 다시
샘물되어 솟아 올랐다.

당시 대문장가들은 이 비석의 비문을 본 후에 앞으로 도저히 글을 쓰지 못하겠다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220여 년 동안 지금 이 자리에서 쉼 없이 샘솟았으니,

영천의 샘물처럼 무엇이든 솟아난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다.

(16)느릅나무 밑에서

370년 된 느릅나무 앞에서 우리를 지도하시는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능침에 계신 단종께서는
'제발 나를 잊지 말아달라'는 것이
우리에게 보내는 부탁이고,
살아있는 우리는 임금님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 제향의 의미라고 하셨다.

영월 장릉의 영천과 수라간
https://youtu.be/q1hRioTUE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