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공 엄흥도 기념관, 화재로 소실(2021.06.25)
영월장릉 인근에 위치한 충의공 엄흥도기념관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난 1999년10월에 지어진 기념관은
일년에 두번 제사를 지낼 때 문을 열고 늘 문이 닫혀있는 상태였다.
이날 불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이 완전히 불에 타 버려서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지난 날 내부를 촬영해 놓은 사진이 있어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초상화, 고문서,교지,그림 등을
꺼내 보았다.
영월 호장(寧越戶長) 엄흥도는 단종이 죽음을 당하자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치된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관을 비롯한 장례 기구 일체를 혼자서 마련하여 정중하게 장사를 치른 후,
자신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旨山)에 묻고 영월에서 살 수 없어서 의흥으로 몸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爲善被禍 吾所甘心(위선피화 오소감심)
“옳은 일을 하다 화를 당한다 하더라도 나는 달게 받겠다”
엄흥도가 지은 여덟 성어이다.
청령포 차디찬 강물 위에 떠 있는 단종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엄흥도는 이 여덟 성어를 가슴으로 토해 내며
드디어 3족의 멸함을 감수하고 단종의 시신을 거두기로 결심했다.
'爲善被禍 吾所甘心'은 영월엄씨의 가훈으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엄흥도 (嚴興道, ?~?) 는 17세기 중반이후
여말(麗末)의 충신·사육신 등 충효에 대한 재평가 및 대대적인 표창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엄흥도의 후손은
송시열의 건의로 등용되었고 그는 사육신과 함께 육신사(六臣祠)에 배향되었다.
1726년(영조 19년)에 증 공조참의(工曹參議)에 추증되었고, 1833년(순조 33년)에는
다시 증 공조판서(工曹判書)로 증직되었다. 1877년(고종 14년) 충의공(忠毅公)의 시호를 받았다.
화재로 전소된 영월 충의공엄흥도기념
전소된 엄흥도 기념관에 나타난 황구렁이
http://www.kado.net/news/articleView.html?idxno=108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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