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나를 멈추게 한 순간들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여남은 개의 꽃을 피워낸 채송화
어느 산 속에서 맡았던 매혹적인 더덕 향기
마치 잉크 한 방울을 똑 떨어뜨린 것 같았던 쪽빛 하늘
내 가슴을 마구 흔들어 놓았던 가을바람
눈사람이 녹지 말라고 두 손을 모았던 어느 겨울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를 맞으며 자유를 느꼈을 때
어느 날 문득 성가 한 소절이 목에 걸릴 때
내가 먹고, 잠자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내 안의 욕구, 욕심을 알아차릴 때
누군가 너무나 그리워질 때
살면서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
그때 그 일을 하지 말았을 것을…
그때 그 말을 하지 말았을 것을…
그때 그냥 모른 척 했었을 것을…
그때 내가 먼저 용서를 구했을 것을…
그때 내가 먼저 양보했을 것을…
그때 좀 더 따뜻하게 대해 주었을 것을…
그때 좀 더 솔직하게 말했을 것을…
그때 좀 더 생각을 깊게 했을 것을…
그때 좀 더 정성을 다했을 것을…
그때 좀 더 참았을 것을 …
매순간 깨어난 의식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나치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누구나 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잘 살고 싶어합니다.
순간 순간 그분의 손길을 느끼며 감사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잘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지나간 과거를 되씹고
오지 않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살면서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현재가 과거나 미래로 흩어지면
나의 삶은 결국 빈자리가 됩니다.
창 안에 앉아 있으면 나는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창 밖에 서 있으면 나는 또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 안에도 창 밖에도 다 계시지만
내가 동시에 다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있는 곳에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이든 사건이든 사람이든
내가 만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매순간 깨어난 의식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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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윤해영(바실리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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