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 저런일/사는 즐거움

어머니가 보고싶다.

여울가 2008. 9. 12. 15:20

며칠 전...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

절 입구에 앉아서 텃밭에서 수확했음직한 채소, 곡식들을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우리나라의 시골 할머니들은 누굴 막론하고 꼭 우리 어머니와 닮으셨다.

43세에 8남매 중 막내인 날 낳으셨던 어머니는 내가 철이 들을 무렵엔

아예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난 젊은 모습의 어머니를 본 기억이 아예 없다.

어머니의 모습을 뵌 듯 반가워서...

생전 해 먹지도 안해본 가지를 샀다.

어디서 가지 좋다는 말은 들어 가지구..ㅋㅋ

 

내 어려선 그 가지를 입술에 보랏빛 물이 들때까지

날것으로 먹곤 했었다.

그때야 군것질거리가 귀한 때라

밭에서 나는 가지, 토마토, 오이, 고구마, 옥수수, 단수수...

이런 것들이 주 간식이었으니까...

어머니 생각나서 산 가지를...

몇날 며칠 냉장고에 넣어 뒀지만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할 지...

그리고 만들어 놓으면 누가 먹겠다는 건지 도대체 대책이 서질 않는다.

 

할 수 없이 또 다시 내 어머니의 흉내를 내 보기로 했다.

칼과 도마를 준비하고 그냥 대충 얇게 썰어서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집안에 널기 시작...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ㅎㅎ..

 

그랬다.

내 어머니는 가을이 되면

늘 나물들을 말리곤 하셨다.

호박...쑥...토란대...가지...시레기...등

깨끗하게 손질 된 나물들을 주실라치면

난 항상 싫다고 거절했었는데...

그 싫던 야채를 말리려고 칼질을 하는데

정말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9년동안 시골에서 혼자 지내시다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언니에게 전화를 하셨다.

큰오빠 집에 좀 데려다 달라고...

그리고...

큰오빠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다음날 점심 드시고...

 

너울너울 아가들이 내려온다며

두 손으로 아가들을 받으시는 흉내을 내시며

2001년 꽃같던 5월에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교회에 다니시며 늘 한가지 기도를 하신다고 하셨다.

잠자듯이 죽게 해 달라고...

그 기도 들으시고 잠자듯이 가신 내 어머니...

대대 종부댁 맏며느리로 시부모님, 시고모님, 결혼한 시동생들까지

한 집안에 사시던 어려웠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 주시던 내 어머니...

 

추석이 모레로 다가온다.

명절에 우리 집에 찾아오는 어느 누구도

갈 때 빈손으로 보내지 않으셨던 후덕하셨던 분...

벌써 대문에 누가 들어서면 어머니는 광에 들어가셨다.

들려보낼 걸 챙기시느라고...

멀다는 이유로 어머니 산소에 가 보지 못하는 이 불효를

인자한 미소로 용서해 주시리라...

정말 온화하고 무던히도 인내하시던 내 어머니가

너무도 보고 싶다...

 

*내가 어머니 뱃속에 들어 있을 때 이미 시집간 큰언니와 큰오빠와 함께한 우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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