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가톨릭 성지순례(국내)

[울산/울주]보다 더 깊숙한 은신처가 된 죽림굴(대재공소)

여울가 2015. 1. 7. 19:59

죽림굴(대재 공소)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충청도 일원과 영남 각처에서 피난해 온 교우들과

간월의 교우들이 좀 더 안전한 곳을 찾다가 발견한

박해 시대(1840-1868년)의 공소로

 언양 지방의 첫 공소인 간월 공소에 이은 두 번째 공소이다.

 

이 공소는 샤스탕 정 신부와 다블뤼 안 신부가

1840년부터 1860년 까지 사목을 담당했던 곳이며,

경신박해(1860년) 때는 박해를 피해 들어온 최양업 신부가

 3개월 동안 은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최 신부는 이곳에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며

자신의 마지막 편지를 썼다고 한다.

 

그 외에도 울산 장대에서 처형된 허인백, 이양등, 김종륜 등

3명의 순교자가 한때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살티성지의 김영제베드로의 동생 동정녀 김 아가다도

최 신부를 도우며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이후 계속되는 경신박해와 병인박해(1866년)의 여파로

교우들이 대거 체포되면서 100여 명을 넘던 신자들이

 사방 각지로 흩어져 대재 공소는 폐쇄되었다.

그 후 1986년 11월 9일 언양 성당 신부와 신자들이 죽림굴을 발견하고,

현재는 매년 발견 기념일에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데,

이 굴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