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 시인은 1940년 시인으로 데뷔하여 1946년 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하여 '청록파'라 불렀다.
1948년 고려대교수로 재직하면서 4.19와 5.16을 계기로 현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시집 <역사 앞에서 >와 유명한 <지조론>을 썼다.
1963년에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초대소장을 역임하였다.
집터에는 자그마한 표지석이 있고 시인의 대표시 '승무' 시비가 있다.
시인은 '방우산장'이라는 옥호를 지닌 성북동 집에서 시인은 30년을 살았다.
당시 건물은 1968년 경에 철거되었고 현 다가구 주택이 들어섰다.
최근에 성북부에서는 집터 인근에 '방우산장'이라는 건축조형물을 세웠다.
조지훈 시인은 자신이 기거했던 곳을 모두 ‘방우산장(放牛山莊)’ 이라고 불렀다.
‘방우산장’. 한 번 들어도 그 뜻을 쉽사리 파악하기 힘든 이름을 가진 이 조형물은
이 곳 성북동에 자리 잡고 있는 조지훈 시인의 집터 인근 도로변(성북동 142-1 일대)에
그를 기념하는 뜻에서 성북구가 조성한 것이다.
그가 1953년 신천지에 기고한 ‘방우산장기’에서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내가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만 있으면
그 소가 지금 어디에 가 있든지 내가 아랑곳할 것이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 것에서 연유하며,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는
그의 ‘방우 즉 목우’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서니 /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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