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경상도

퇴계 이황 종택을 끝으로 1박2일 여행 끝

여울가 2018. 8. 30. 20:10

 

 

 

 

 

 

 

 

 

 

 

 

 

 

 

 

 

도산서원에서 언덕길을 넘으면

바로 퇴계 이황의 종택이 있다.

종택 주변에는 이황의 후손인

이육사문학관도 있다.

 

종택에는 퇴계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어서 밖에서만 기웃거리고

돌아섰다.

 

퇴계가 태어난 퇴계태실(노송정고택)은

총 34칸의 건물로 전체적으로 보면 5칸 솟을대문과 ‘ㅁ’자형 정침(안채) 영역, 오른쪽으로 같은 규모의 5칸 솟을대문과 추월 한수정으로 이루어진 영역, 그리고 이 두 영역의 뒤쪽에 있는 사당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에는 퇴계의 손자인 이안도(李安道) 선생의 처 안동권씨에게 하사된 열녀정려문(烈女旌閭文)이 걸려 있다

 

성 이씨는 본디 지금의 청송군 진보면에 자리잡은 집안으로 고려시대에는 대대로 지방의 향리로서 관직에 종사하다 고려 말에 이황의 7대조인 이석(李碩)이 생원시에 합격함으로써 신흥사대부 가문이 될 기반을 닦았다. 이황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58명을 배출하였고, 문집 등 저술을 남긴 학자가 50여 명에 이른다.

 

퇴계는 할아버지인 노송정 이계양(老松亭 李繼陽)이 1454년에 지은 ‘노송정고택’에서 연산군 7년(1501년) 11월 25일 태어났다. 이계양의 두 아들 가운데 맏이인 이식(李埴)의 일곱째 아들이 바로 이황(李滉, 1501~1570)이다.

 

퇴계 종택은 처음 동암(東巖) 이안도(李安道)가 한서암 남쪽에 지었고, 1715년(숙종 41) 정자인 추월한수정(秋月寒水亭)을 새로 건축하였다. 이후 10세손 고계(古溪) 이휘녕(李彙寧)이 구택의 동남쪽 건너편에 새로 집을 지어 옮겨 살았다. 

그러나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두 곳 종택이 다 불타 버렸고,  현재의 퇴계 종택은

하정공 이충호(霞汀公 李忠鎬)가 

1926~1929년에 새로 지은 집이다.

 

우린 돌아가는 길에 영주에 들러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예전에 가 본적이 있는

축협한우프라자풍기점에서

소불고기와 육회를 먹고

집으로 달리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손녀와 여행이 가능한 지 시험삼아 떠났던

1박2일 여행은 완전히 성공적으로 끝난 셈이다.

 

주산지와 도산서원

https://youtu.be/h4qVKxCdqV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