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10경중 제 6경 선돌
선돌은 영월읍 방절리 서강 안에 절벽을 이룬 곳에 위치해 있는데
높이 70m 정도의 바위이다.
선돌은 마치 큰칼로 절벽을 쪼개내리다 그친 듯한 형상을 이룬 입석을 말한다.
이 입석의 바로 앞에 우뚝 선 기암은 신비스럽다.
또한 절벽과 입석 사이로 내려 보이는 강물은 마치 금강산의 일부를 보는듯한 절경을 이루고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와 선돌을 구경한다.
[수정의견]
소개
영월 선돌 (寧越 立石)
국가지정문화재 자연명승 제76호.
환경부지정 강원고생대국가지질공원 명소.
기반암인 석회암괴에 자연적인 용식작용에 의하여 갈라진 틈(절리)을 따라
오랜 세월동안 용식·침식이 반복되면서 큰 기둥모양으로 변화된 바위를 선돌(立石)이라 한다.
높이는 약 70m, 보호·관리 지정면적은 222,774㎡이다.
암석의 표면이 거칠고 절리면들이 수직으로 발달하고 있어,
수직절리를 따라 일어난 기계적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형성된 수직으로 발달한 돌기둥이다.
탐방안내
⑴ 옛길 따라 역사 따라 - 전망대 아래쪽에는 옛날에 영월읍내로 드나들던 신작로가
층암절벽을 따라 개설되었는데 지금은 탐방 길로만 가능하다.
순조 20년(1820년)에 영월도호부사 홍이간(洪履簡 1753~1827), 오희상(吳熙常 1763~1833),
홍직필(洪直弼. 1776~1852) 세 사람이 어느 날 하얀 구름에 싸인
선돌과 층암절벽의 비경에 감탄하여『雲莊壁(운장벽)』글자를 오목하게 새겨 주색(朱色)을 칠하였는데,
옛길 암벽 3m 높이에 있다.
또한 옛길 옆 강물 쪽에 있는 커다란 자연석에는
『光武九年 李春和 排路修敕 碑 乙巳 二月 日(고종 42년 이춘화 길을 밀쳐서 닦고 다듬다.
1905년 2월 일. 碑 돌에 새기다)』이 오목하게 새겨져있다.
⑵서있는 돌(立石)은 임금을 만나 신선암(神仙岩)이 되다
노산군(단종)이 영월로의 유배 길에서 잠시 쉬게 되었다.
강물에 발을 담그고는,
“서강(西江)의 푸른 물은 굽이돌아 흐르고,
물안개는 피어올라 구름 병풍 큰 바위 맴도니,
한 폭의 그림인 듯 선경에 다다른 듯,
높다란 하늘 바위 신선인가 하누나.” 하여 신선바위(神仙岩)가 되었다.
⑶ 나도 시인 너도 시인(詩人)
전망대에서 자연의 비경을 바라보는 방법은, 손등을 볼 수 있도록
왼쪽 팔을 길게 뻗어 손가락 펼치고, 엄지를 신선바위에 맞추고 한쪽 눈을 감으면서
엄지와 검지 사이로 강을 내려다보면 풍취를 더하게 된다.
굽이돌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6천만년 전부터 서서 나를 기다려온 선돌의 기다림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가다듬고 보니
보이는 저 바위가 바로 신선이로구나.
이런 감흥에 지어지는 한편의 시(詩)가 탄생했다고...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
서강의 푸른 물
굽이돌아 흐르니
하얀구름 피어올라
그리는 그림
아~~!!
그대 오셨구려.(심향 김원식)
오늘 날의 특별난 소문은
“몸과 마음 가다듬고 신선바위에게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지더라.”
★雲莊壁(운장벽):구름이 둘러쌓인 장엄한 멋진 절벽이라는 의미로 1820년경에 새겨짐.
현재 이 금석문은 방절리 쪽으로 난 둘레길을 따라
서강을 따라서 걷다보면 5m정도 위 절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吳熈常(오희상):1763년~1833년 사이의 조선 후기 학자.
洪履簡(홍이간):1753년~1827년 사이의 인물로 영월부사를 1819년~1821년 사이에 지냈다.
洪直弼(홍직필):1776년~1852년 사이의 인물로 홍이간의 아들이다.
영월 10경중 제6경
영월에 들어서면 신선이 된다. 선돌...
https://youtu.be/PWICX6xKL3s
#영월군
'여행길에서 > 충절의 고장, 문화도시 영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생대석회암 동굴-영월고씨굴 (0) | 2020.09.28 |
---|---|
알밤 줍기 체험은 넘 재밌어 (0) | 2020.09.25 |
호탕한 김삿갓 만나기-김삿갓유적지와 문학관 (0) | 2020.09.25 |
김삿갓유원지 주변-靜岩 朴泳國先生 追慕碑(정암 박영국 선생 추모비) (0) | 2020.09.25 |
방절리 정려각(효자각,열녀각) (0) | 2020.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