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런 그리스도인/하느님은 나의 전부

예수님,부활하셨어요.

여울가 2021. 4. 4. 22:25
























2021. 4. 4.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봄이 왔지만 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마음과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걱정과 근심이 있다면 봄의 향기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3슬픔과 고통이 있다면 봄의 초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2020년 부활이 그랬습니다. ‘부활래불사부활(復活來不似復活)’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미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성삼일 전례를 교우들과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부활찬송도 함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부활이 왔지만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었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지는 못하였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지치고, 힘든 모든 사람에게 ‘평화와 성령’을 주셨습니다. 2021년에는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주님 부활의 기쁨이 온 세상에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제 부활 성야미사의 독서와 복음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자식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 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만을 믿고 광야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거센 폭풍우에서 구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와 잘못으로 고난과 고통이 다가왔지만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니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유배지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힘들고 지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평화와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혜는 하느님께로부터 옵니다. 재물, 권력, 명예는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참된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줍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니,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부활 성야 독서와 복음은 ‘빈 무덤’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천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2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셨던 곳, 표징을 보여 주셨던 곳 갈릴래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탄생이 아닙니다. 부활은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활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다시금 허리띠를 동여매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는 더 이상 치욕과 굴욕의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는 구원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12명의 제자가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이 20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들은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재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이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는 언제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