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런 그리스도인/하느님은 나의 전부

연중 제21주일 미사 강론 말씀

여울가 2021. 8. 22. 14:23

연중 제21주일 미사

소련의 스탈린 시대에 콤팰트라는 이름을 가진 유다인 의사가 있었습니다.
콤팰트는 스탈린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가 시베리아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천주교 신자를 만나 예수님을 알게 됐는데, 주님 말씀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부정과는 타협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콤팰트가 수용소 규율을 어기게 됐습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수용소에서 젊은 남자 한 사람이 암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는데 사상이 나쁘다는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수술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콤팰트는 의사로서 큰 책임을 느껴 남모르게 수술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의사로서 양심에 걸리는 일을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수용소 법을 어기고 금지된 수술을 한다는 것은 바로 사형 선고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콤팰트는 수술을 감행했고 그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사형이 행해지기 전날 밤에 콤팰트는 수술을 해준 젊은 남자를 찾아갑니다. 콤팰트는 그에게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며, 자기가 왜 수술을 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이 젊은이를 수술해준 죄로 당신이 죽게 됐는데
후회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아주 유명한 대답이 나오지요.
<그리스도 안에서의 결심은 결코 후회가 없습니다.>

다음 날 콤팰트는 처형장으로 담담히 걸어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콤팰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하느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때 수술을 받고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상 수상 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예수 추종을 위한 결단은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 행위로 드러나야 합니다.
즉 <육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은 생명을 준다>(6,63)는 말씀을 믿고 이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추종의 결단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번 매 순간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 사도는 분명 오늘 훌륭한 고백과 예수 추종을 결단하였지만, 한순간에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스승을 배반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금기의 선을 넘어선 사람만이 왜 금기가 필요한지 안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주님은 심지어 죄까지도 허용하신 분이십니다.
어쩌면 저는 사람에게서 떠났지, 주님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저의 죄로 말미암아 숱하게 넘어졌고

지금도 자주 넘어지지만, 주님을 떠나서는 내가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에 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던 것처럼 저 또한 이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순간과 날들을 살아가겠습니다. 이젠 어리석지 않을 나이가 되었기에, 사람을 믿기보다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위로이며 성채이십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영이며 생명이시옵니다. 당신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복음환호성)

김준수신부님 강론 글 중에서 발췌...
(연중 제21주일, 21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