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경기도

[수원]정조의 효심이 만든 화성행궁

여울가 2025. 4. 17. 21:55

250415

오늘 현장견학은
수원 화성 수원행궁이다.

사도세자의 아드님이신
정조는 효자로 잘 알려져 있다.
사도세자의 릉을 수원으로
옮기고 나서 아버지를 보고 싶을 때마다
행궁에 머무셨다고 한다.

궐밖 행차를 가장 많이 하신 임금님으로도 유명할 정도로
수원 행성을 자주 찾으셨다고 한다.

사도세자가 28세로 승하하신 후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지아비 참배를 33년이 지난 후에 하게 되었고,
이 때 행궁에서 부모님 회갑연을
성대하게 열었다고 한다.

회갑상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고,
그 회갑 때는 수원성에 살고 있는 회갑을 맞이하신 분들을 모두 초청해서
1인1상을 차려줬다고 한다.

행성이 신풍초등학교가 있었는데
학교는 이주를 했고, 겉은 다 죽었는데
곁가지가 살아있는 신기한 느티나무도 보고, 대장금 드라마를 찍었던 세트도
구경했다.
신풍루 옆 '화성행궁'은 정조의 친필이고 정조의 어진도 볼 수 있었다.

아버지 영조는 사도세자라고 했고 아드님 정조는 시호를 장헌세자라고 했다.
후에 고종의 대한제국에서 황제로 추존했고 묘호는  장조( 莊祖)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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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터는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행궁(왕이 궁궐을 벗어나 머무는 곳)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던 곳으로, 수원 화성의 부속물이다. 1796년(조선 정조 20)에 화성을 축성한 후 팔달산(八達山) 동쪽 기슭에 576칸 규모로 건립하였으며, 그 전까지는 1789년(정조 13) 수원읍치를 화산에서 팔달산으로 옮기면서 관아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효성이 지극한 정조가 부왕 장조(莊祖:장헌세자)의 능침(陵寢)인 화산릉(華山陵)을 참배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 행궁에서 쉬어갔다. 당시에는 봉수당(奉壽堂)과 경룡관(景龍館)·복내당(福內堂)·유여택(維與宅)·노래당(老來堂)·신풍루(新豊樓)·남북군영·강무당(講武堂)·무고(武庫)·수성고(修城庫)·집사청(執事廳)·서사청(書史廳)·비장청(婢將廳)·우화관(于華館)·득중정(得中亭)·행각(行閣) 등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 화성행궁의 주건물인 봉수당에 의료기관인 자혜의원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훼손되고 낙남헌(洛南軒)만 남게 되었다. 봉수당의 원래 이름은 정남헌인데, 정조가 모친 혜경궁 홍씨(경의왕후)의 회갑연을 이곳에서 베푼 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봉수당으로 불렀다. 낙남헌은 봉수당 북쪽에 있던 ㄱ자 건물인데 노래당과 함께 곱은 ㄱ자형으로 배치된 초익공(初翼公) 양식의 팔작지붕집인데, 지금은 꺾인 부분이 잘리어 없어지고 一자형의 건물로 바뀌었다.

1975년 화성 복원 결정과 함께 행궁 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96년 화성축성 200주년을 맞아 수원시가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복원공사를 시작하였고, 2003년 7월 말 봉수당, 득중정, 궁녀와 군인들의 숙소 등 482칸의 복원을 완료한 1단계 공사가 끝났다. 이어 10월 9일 화성행궁 21개 건물 중 18개 건물과 정조의 영전(影殿)인 화령전 등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는 개관식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