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 저런일/사는 즐거움

[영화]화려한 휴가..

여울가 2007. 8. 17. 02:52

지금 시각이 새벽2시30분...

잠을 자야 한다..자야 한다..아무리 주문을 외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어쩌다 겨우 잠이 들라치면 이상한 꿈에 소스라치고

해가 중천이 되도록 누워있으면 온몸이 가라앉는다.

거기다가 헛구역질까지 나오면서 온통 사람의 모습이 아니니...

그렇다...

내 온 정신을 싸고 도는 걱정과 근심..그리고 괴로움들을

내 힘으론 도저히 떨쳐 내지 못할 것 같다.

 

가슴 한가운데 불덩이 하나 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확 불이 붙어 버릴것 같은 시간들을

지금 보내고 있다.

울고 싶어서 [화려한 휴가]를 보러 갔다.

혼자서...

 

80년 5월의 광주...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음력 사월초파일이었던가?

휴일을 맞아 서울에 왔다가 광주에 도착했는데

고속버스가 터미널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손님을 내리게 했다.

전쟁이 났나 보다..

그런데 어찌하여 북쪽에서부터 난게 아니고 남쪽에서 부턴가?

그런 생각을 하며...

깜깜한 거리를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 집을 향하여....

시내는 온통 깜깜했고 군데 군데 불기둥들이 시뻘건 연기를 내며 타고 있었다.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시민 학살과 시민들의 항쟁이  계속되고

공권력이 무너져 버린 파출소들의 병기창고는 모두 시민군이 접수했다.

옥상에 올라가서 구경하는 사람도 쏘고...

우리 동네 임신한 새댁은 중학교 교사였던 남편에게 공중전화하고 나오다가

총을 맞았다. 그녀에겐 돌이 갓 지난 아들도 한명 있었는데...

유리창으로 되어있는 집들은 창문에 담요를 치고

눈과 귀를 막고 지냈다.

폭도로 지칭되었던 시민군들이

저녁에 머물다 간 교실 바닥에는 피와 소독약이 묻은 가아제며 음료수병들이 나뒹굴었고

얼마 후 포승줄로 묶인 시민군들이 현장 검증에 끌려온 모습을 보았다.

 

탈취되었던 총기로 인한 사고가 한건도 없었다는 보도가 그 후 있었다.

신문 방송까지 끊겼다가 호외로 나온 신문의 1면에

 "무등산은 알고 있다"라는 시는 우리 동네 죽은  새댁 남편이 쓴 거였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송정리 비행장까지 날라와

 "친애하는 광주 시민 여러분, 나 이나라의 대통령 최규하올시다."로

시작되었던 방송을 듣고 얼마나 이 나라의 정치가 한심하고

그 대통령이 불쌍했던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내 조카는 하루종일 시민군들의 차를 따라 다니다

식구들 애를 태웠는데 아주머니들께서 김밥이며 떡이며 차에 올려 주는거

받아 먹었던 일을 무용담처럼 늘어 놓기도 했다.

이제 27년 세월이 흘러

그날의 이야기를 영화로 보게 되었다.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나라...

남들은 울었다는데 눈물도 나지 않고 영화가 끝났는데

자리에서 일어설 힘조차도 없었다.

이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그들의 영혼이

이제 눈을 평안히 감고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누리게 되길...

 

 

'이런일 저런일 > 사는 즐거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중대 2소대 1분대 나용혁 훈련병에게  (0) 2008.01.14
나용혁 훈련병의 모습  (0) 2008.01.14
파주 여행 후 주고 받은 이메일들..  (0) 2007.08.10
음악 피정  (0) 2007.07.04
3식구 3집 살림  (0) 2007.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