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충청도

살아나라..태안 앞바다야...기름때 벗기기

여울가 2008. 3. 12. 17:48

기름 유출사고가 난지 두달여 지난 늦겨울 새벽에

수락산성당 앞에서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늘 도움만 받고 살면서

나는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음을 회개하면서

이렇게라도 갚아야지 하는 거창한 생각을 품고 떠난 길...

 

태안성당 앞마당엔 전국 각지에서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도착한 버스들이

사랑의 마음들을 토해내고 있었다.

작년에 봉헌되었다는 성당 건물이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성당에서 상주하며 봉사하시는 형제님의 안내로

성당신자 전담 구역이라는 장소로 향했다.

사실 태안 앞바다의 기름 유출은 너무가 큰 생태계 파괴라든가

지역 주민들의 생계와 관련되어 있어 사진을 찍는다는 자체가 죄스러웠지만

이 말리지 못하는 사진광(?)이 순간 포착하여 단체사진 한장을 찍었다.

 

모두 흰색의 방제복과 검정 장화 그리고 고무장갑을 끼고 또 마스크를 하며

서로 서로 우주인 같다며 웃는다.

장화는 재활용을 하고 있고 그외의 것들은 일회용이었는데

한번 쓰고 버리는 것들이 자꾸 아까운 생각과 더불어

또 하나의 엄청난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아,

태안 앞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다.

바다는 예전처럼 말이 없는데 바닷가 모래밭,갯벌,바위,돌멩이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역겨운 냄새가 나는 바다를 고개를 바로 들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너무 미안해서...

돌멩이들은 닦고 또 닦아 보지만 찌들어버린 기름의 흔적은 도저히 지워지지가 않는다.

바위에 조가비들처럼 딱 달라붙어 준비해 온 EM세척액을 뿌려가며 쇠솔로 문지르고 또 문지르고..

방제 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들이다.

포크레인은 모래바닥을 계속 파서 바닷물과 모래들을 섞어서 기름들이 밖으로 나오게 하고...

사람들은 모래사장의 중간 부분을 깊게 골을 파고 그 윗부분에 바닷물을 뿌린 뒤

골로 흘러내린 바닷물에 섞여내려오는 기름들을 부직포를 띄워 걷어내고...

또 바닥을 파고 파서 타르 덩어리들을 모아서 쓰레기 봉지에 집어 넣고...

 

 

 

 

 

 

내가 만진 돌멩이들을 누군가가 몇십번씩 만지고 닦았으련만

이처럼 돌멩이 한개,모래 한알이 귀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었다.

잘 닦아지지 않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어느 세월에 예전의 바다가 될 것인지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비록 태안 성당 봉사자님들이 2인분이 넘을만한 떡국을 퍼 주셔서

밥값도 못하고 온 것 같은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생계의 터전을 잃고 비탄에 빠져있을 태안의 주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눈으로 확인하고 같이 가슴 아파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길고도 어두웠던 지난 겨울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봄 맞아 솟아오르는 새싹들처럼

다시 살아나라..

태안 앞바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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