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많은 사람이 열렬히 찾고 있지만
침묵 속에 머무는 자만이 그것을 차지합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누구나
그가 비록 경탄할 만한 것을 말한다 해도
내부는 비어 있습니다.
침묵으로 성인들은 성장했고
침묵으로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침묵으로 인해 하느님의 신비가
그들 안에 알려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침묵을 사랑하십시오.
침묵은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열매를 여러분에게 가져 올 것입니다.
-----피정의 집 벽에 쓰여진 글----
일상을 벗어나서 묵상과 기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할 즈음
피정을 떠났다.
마지막 눈이 내리는 걸까?
2월 끝자락에에 내리는 눈이 지난 겨울 눈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내게 위로을 주는 듯 했다.
시흥에 있는 성 바오로 피정의 집을 찾아 간다.
같이 가기로한 조 소화데레사와 전화로 서로 묻고 물어 가면서...
나즈막한 산기슭의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내리는 눈과 함께 어찌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지
조용히, 조심히 걸어야 하는 입장도 잊고 좋아라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침묵 대 피정....
우리는 피정을 앞두고 날마다
*오소서 성령이여! 매일 기도하고
*관대하게 애덕을 실천하며
*기쁘게 무엇인가를 포기할 것을
명 받았었다.
2박3일 동안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되는 침묵 대 피정이 시작되었다.
지도 수녀님의 오리엔테이션과 관상기도의 원리와 기초 강의...
관상기도는 성경을 읽고 예수님이 현존하셨던 그 무대를 상상으로 찾아가보고
그 현장에 나도 같이 함께하는 기도다.
내 시간을 성령께 내어 드리며 그분과 가까운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예수님과 묻고 대답을 듣는 담화를 하고 예수님의 옷자락도 한번 만져보고...
이미 관상 기도에 대해 전에도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구체적인 실습을 하는 소중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수녀님의 강의 노트-
이 세상 안에 살고 잇는 우리 모두는 하느닝믈 찬미하고 경배하며
그 분의 뜻에 따라 살아 감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우리 각자 삶의 본래 목적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 안에 심어 놓으신
본래의 목적에 맞갖게 살도록 우리 모두를 도와주기 위한 수단들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것들은 그것을 사용할 때 우리 존재의 깊은 곳에 심어져 있는
본래의 목적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서 택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라면 버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양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사물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지 않도록 온전히 우리 자신을 열어 놓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것을 선택할 것인가? 저것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조심스런 평형의 상태에서 어느 것이 더 직접적으로, 더 확고하게
우리의 본래의 목적에 맞갖도록 이끄시는지에 따라 선택을 하도록 해야 한다.
1인 1실 독방에 들어 갔다.
벽 중앙에 십자 고상이 걸려 있고
자그마한 침대 하나, 그 옆엔 방석이 깔린 책상 한개..
책상 위엔 성경과 성무일도, 1700년대에 마레쇼 신부님께서 쓰신
샬트르 수녀회의 지침서인[행위를 잘하기 위한 교훈서]가 놓여 있었다.
밖에는 아직도 눈이 내리고
산속에서 바라다 뵈는 건너편 아스라한 불빛 몇개와 눈을 뒤집어 쓴 나무들이
그야말로 어릴 때 보았던 크리스마스 카드의 확대판 그대로인데...
나도 잠시 수녀님이 되어 지침서 한권을 밤새도록 읽는다.
새벽이 밝았다.
정적만이 흐르는 수녀원 뜰에 밤새 내린 눈들이 활짝 꽃을 피웠다.
눈길에 푹푹 빠지며 십자가의 길 14처를 순례한다.
사순시기를 맞아 14처의 묵상은 더욱 더 피부 속 깊이 파고 든다.
밥을 먹는 시간에도
달그락 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그저 젓가락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들려오는 성가 소리도 소리가 아닌 정적으로 들린다.
정갈하게 차려진 뷔페식 밥과 반찬들은 딱 먹을 양만 퍼 가기때문에 부족함도 없고
거의 남지도 않는 그야말로 맞춤식 양이다.
식단 앞에 놓여진 어느 목사님의 시를 담은 액자의 시만큼이나
꼭꼭 씹어서 공손히 삼킨다.
47명의 피정 참가자들이 언제든지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둔 간식꺼리들도
늘 그만큼의 양을 유지하고 있다.
만약 이게 바깥 세상이었다면 저녁에 먹으려고 자기 주머니에 적당량을 챙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련만 어느 누구 하나 먹는 것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매점의 물건들도 모두 무인 판매를 하고 있어 붙여진 정가대로 돈을 놓고 가져 오면 끝이다.
시퍼런 배춧잎들이 차곡차곡 개켜져 가는 모습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
렘브란트가 그렸다는 돌아온 탕자의 그림을 보면서 관상을 해 보는 시간도 있었다.
아버지의 다른 두손(한손은 큰데 아버지의 마음이고 ,다른 한 손은 작은데 어머니의 마음이란다.)과
기둥뒤에 숨어서 동생을 반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큰아들의 모습...
마태복음에 나오는 광야에서 유혹을 당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에 대한 관상...
요한복음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에 내가 초대 받아보기도 하고...
마지막 날 아침에 자연의 일부인 우리들이 산책길을 나선다.
눈에 보이는 자연물 중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자연물을 한가지씩 채집해 와서
그 자연물을 택한 이유를 서로 나누는 자리...
어쩜 그리도 진지하고 자연물과 그 사람이 딱 일치해 보이는지...
그리고 그 자연물을 주님께 봉헌하는 시간을 갖는다.
하찮은 자연물 하나가 이렇게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내게 물어 보신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
*너는 나르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겠느냐?
주님,
당신께서는 지치고 고단하여 살아갈 기력을 잃어버린 저를
이 피정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박3일 동안 온전히 당신과 함께 함으로써 좀 더 지혜롭고 강건해져서
당신의 모습을 닮으려고 합니다.
이 기간동안 저의 모든 감각과 저의 상상 그리고 제 마음에 침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어떤 힘찬 웅변보다도 이 침묵이 더 힘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너를 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늘 내 곁에 머물러라."
"세상 끝날까지 너를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신 주님,
당신의 가르침이 제가 처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제 길을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도록 허락하소서.
당신께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
지극히 거룩하시고 선하신 당신으로부터
넘치는 은총과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제가 받은 은총과 사랑을 주위 사람들과 나누게 하시고
나눔으로써 받는 기쁨을 제가 맛보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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