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스스로에게 지워준 숙제를 안 한 것처럼
써야 하는데 못쓰고 바쁜 9월이 절반이나 흘렀다.
소록도 기행에 앞서 맨 먼저 들른 곳 벌교...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다.
여수에서는 돈자랑 하지말고
순천에서는 인물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는 주먹자랑 하지 말고
장흥에서는 문장 자랑하지 말라는...
(사실 제대로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이곳 벌교를 배경으로 한 조정래의 [태백산맥]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아가기 전에 우선 점심을 먹었다.
관광버스 3대가 들어갈 만큼 넓은 주차장을 갖춘 꼬막정식 집...
입구부터 꼬막까는 아주머니들의 바쁜 손놀림이 달인의 경지다.
꼬막정식을 먹으면서 시를 쓴 송수권님의 [퉁}을 오는 길에
낭송해가며 꼬막까는 머리로 익히고서
통꼬막부터 까 먹기 시작하는디
쫄깃쫄깃 짭쪼롬한 그 맛이 혀에 딱 달라 붙는다.
퉁
-송수권-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꼬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에 뻘물리 튀더라구요.
그쪽 말로 그 맛 한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시인 - 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잇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람,
그게 진짜 곰삭은 맛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고믹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 놀이 하는거래요.
시도 그늘 있는 시를 쓰라고 또 퉁을 맞았지요.
(퉁-꾸지람, 괴-고양이, 숭악한 맛-깊은 맛)
꼬막전
꼬막회무침, 꼬막탕
통꼬막
벌교 홍교
종목 : 보물 제304호
분류 :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교통/ 교량
수량 : 1기
지정일 : 1963.01.21
소재지 : 전남 보성군 벌교읍 벌교리 153
시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보성군
홍교란 다리 밑이 무지개같이 휘어 반원형이 되도록 쌓은 다리를 말하며, 아치교·홍예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이 다리는 현재 남아 있는 홍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현재도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 자리에 뗏목을 이은 다리가 있어 벌교(筏橋)라는 지명이 생겨났으며,
조선 영조 5년(1729)에 선암사의 한 스님이 돌다리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후 영조 13년(1737) 다리를 고치면서, 3칸의 무지개다리로 만들어졌고,
1981∼1984년까지의 4년에 걸친 보수공사를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지개모양을 한 다리밑의 천장 한 가운데마다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돌출되어 아래를 향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물과 용의 관계에서 오는 민간신앙의 표현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이 용의 코끝에 풍경을 매달아 은은한 방울소리가 울려퍼지도록 하였다고 한다.
다리가 놓여진 강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데 썰물때에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때에는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
화려하고 거대한 모습속에서도 단아한 멋을 풍기며,
이 다리를 위해 주민들은 60년마다 한번씩 회갑잔치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원래 다리의 규모는 폭 4m, 길이 80m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며,
웅대함과 함께 뛰어난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원래는 3칸짜리 무지개다리였는데 증축하여 이런 다리의 모습이고
60년마다 이 다리의 회갑잔치를 한다는 하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리 아래에 용머리는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거라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이 있었다.
이 홍교 밑으로 강물과 바닷물이 서로 만나고 있어 예전에는 고기들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200쇄 출간 700만부 판매를 축하하는 보성군의 플래카드가 우리를 맞이했다.
태백산맥은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 산자락에 자리 잡은 현부자네가 제각 부근에서부터 시작하여
빨치찬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 가을 어느 날까지 우리 민족이 겪엇던 아픈 과거를 반추해 내고 있다.
태백산맥은 총 10권까지 있으며 등장 인물로는 지식인 출신 염상진과 그를 따르는 하대치,
회의하는 지식인이지만 역사로부터 끊임없는 선택과 실천을 강요당하는 김범우,
이성적인 국군 장교 심재모, 우익 청년단장 염상구, 손승호, 서민영, 안창민, 소화와 이지숙, 들목댁 등이 있다.
조정래는 1970년 현대문학에 [누명]과[선생님 기행]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한 후 1973년 <월간문학>, 1976년 <소설 문예>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조정래의 작품세계는<현대 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한 1983년을 기점으로 하여
그 이전을 전반기, 그 이후를 후반기로 나눌 수 잇다.
전반기의 작품에는 작가의 체험을 배제하고 사회의식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했다.
그는 뚜렷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분단이라는 민족적 비극이 빚어낸 인물들의 고단한 삶을 객관적으로 형상화하고
그러한 비극을 극복하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이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은 건축가 김원 씨가 어둠에 묻혀버린 우리의 현대사를 보며
자연스럽고 절제된 건축 양식에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으로 문학관을 시각화시켰다고 한다.
문학관의 1,2층은 전시실 및 자료실이고 4층 전망대에서는 벌교읍을 조망할 수 있게 지어졌다.
건물이 북향인 점을 보완하기 위해
건물 옆으로 옹석벽화를 지었는데 '백두대간의 염원'이라는 제목인 옹벽은
우리 민족의 질곡한 역사를 극복하고 지구상에 남아있는 마지막 분단 국가로써
분단의 아픔을 종식하고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태백산맥 문학관을 건축한 김원 건축가와 한국화가 이종상님이 공동기획한 작품이라고...
소설 [태백산맥]을 쓰기 전과 쓰던 중과 쓴 후의 작가 모습
두마리의 물고기가 두마리의 용을 형상화했다고...
아들의 원고 필사본- 작가 사후 50년동안 인세를 받게 될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백의 원고를 필사하도록 했다는 조정래님.
태백산맥의 육필원고
가족사진
직접 그리셨다는 지도
수녀님께서 선물하셨다는 스웨터
현부자집
마루에서....
부자집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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