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가톨릭 성지순례(국내)

대희년 사순시기 중 배론성지 순례

여울가 2016. 2. 27. 08:10

 

배론 성지는 박해를 피해 산과 계곡으로 숨어든 교우들이 모여 이룬 교우촌으로

주로 옹기 굽는 일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곳입니다.

앞길이 창창했던 황사영은 천주교의 오묘한 이치에 매료되어 세례를 받은 후에는

 벼슬길도 마다하고 1801년 신유박해 때 배론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해 8월 주문모 신부의 순교 소식을 듣고는 낙심과 의분으로

북경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탄원서를 배론의 옹기 토굴에서 썼는데,

그것이 황사영 백서입니다. 하지만 백서를 품고 가던 황심이 붙잡혀

황사영도 대역무도의 죄인으로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옹기 토굴 옆에는 1855년 장주기 회장의 초가집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서구식 대학인 신학당이 복원되어 있고,

그 뒷산에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있습니다.

 

배론 성지는 1999년 최양업 신부 서품 150주년을 기념하고

시복 시성을 기원하기 위해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을 건립하였는데,

그 모양이 마치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합니다.

또한 대성당과 소성당 두 동으로 건립된 기념성당은

성지 주변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 하여 '배론'이라 불려온 지명과

어울리도록 배 모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002년 10월에는 성지 초입에 순례자들의 집을 봉헌하였고,

2004년 11월에는 대성당 뒤편에 최양업 신부의 거룩한 삶의 여정을 한 눈에 보고 묵상함과 동시에

산 이와 죽은 이가 한 자리에서 만나 기도할 수 있는

 '최양업 신부 조각공원'을 조성해 봉헌하였습니다.

 

사순시기에 배론성지에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