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전라도

전라도 지방의 99칸 양반 가옥, 운조루

여울가 2016. 6. 7. 23:15

한국의 3대 명당터,구례 운조루...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문화재 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8호(1968.11.25 지정)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 (1776년)에 당시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柳爾胄)가 세운 것으로

99간 (현존73간)의 대규모 주택으로서 조선시대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는

 품자형(品字形)의 배치 형식을 보이고 있는 양반가이다.

류이주는 그가 처음 이사와 살았던 구만들(九萬坪)의 지명을 따 호를 귀만(歸晩)이라 했으며

 이 집을 귀만와 (歸晩窩)라고도 불렀다.

 

운조루라는 택호는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란 뜻과 함께

 <구름위를 나르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이란 뜻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디 이집의 이름은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글이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 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우리로 돌아 오네>의 문구에서

 첫머리 두 글자를 취해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일대는

금귀몰니(金龜沒泥), 금환락지(金環落地), 오보교취(五寶交聚), 혹은 오봉귀소(五鳳歸巢)의 명당이 있는 곳이라고 하며,

이 집터에서 거북이의 형상을한 돌이 출토되었기에 금귀몰니의 명당으로서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져 있다.

운조루에는 바깥사랑채, 안사랑채, 아랫사랑채 등으로 각각 누마루가 있었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안사랑채와 아랫사랑채의 누마루는 남아 있지 아니하다.

 

현재 이 집은 건평 426.45m²(129평)으로 一 자형 행랑채와 북동쪽의 사당채를 제외하고

 T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안채, 안마당의 곡간채가 팔작지붕, 박공지붕, 모임지붕으로 연결되어 있는

일체형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집에 있는 목독 '타인능해'는 (나무로된 쌀독의 마개에 <他人能解>라는 글귀를 써두었음)

가난한 이웃 사람이 쌀이 떨어지면 이곳의 목독에서 쌀을 꺼내 끼니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음덕을 베풀고 적선을 하는 것이 돈을 가진 자의 도리임을 보여 주었던 류씨 문중의 상징물이다.

 

200년이 지나도록 망하지 아니하고 오늘날까지 가문이 번창한 것은 오로지 분수를 지키며 생활하고,

이웃을 돌보았던 마음이 전승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류이주의 5세손인 류제양(柳濟陽)은 일만여편의 시(詩)를 쓰고

손자 류형업(柳瀅業)에 이르기까지 80년간 하루도 빠지지않고 생활일기와 농가일기를 썼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록문화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위대한 선조들의 유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솟을대문에 걸어놓은 동물뼈 2개는 류이주가 맨 손으로 잡은 호랑이뼈라고 전해지고 있다.

현재 운조루는 문화재관리 차원으로 천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으며, 11대 종부가 살고 있다.

종부인 할머니는 상당한 미인이시고 기품이 있으셔서 정말 양반 가문이구나...하는 기분이 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