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랑스런 그리스도인/한국124위 순교복자 열전

124위 복자 열전(119), 김종륜 루카

여울가 2017. 6. 28. 08:12

 제119위 김종륜 루카


제119위. 김종륜 루카(金宗倫 Luke)

축일 : 5월 29일

성인구분 : 복자

신분 : 양반, 순교자

활동연도 : 1819-1868년

같은이름 : 김 루카, 김루카, 누가, 루가, 루까, 루카스, 루크

 

김종륜(金宗倫) 루카(Lucas)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 충청도 공주에서 천주교에 입교한 다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본관은 경주요, 족보에 기록된 이름은 ‘경희’(敬熙)이다.

 

김 루카는 평소에 화목함을 특히 강조하였고,

어느 누구와도 화목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1866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부모님을 모시고 경상도 상주 멍에목(현, 경북 문경시 동로면 명전리)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다시 언양 간월(현, 경남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을 거쳐

울산 죽령(현, 경남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죽령 교우촌에서 김 루카는 이양등 베드로 회장과 허인백 야고보를 만나

 서로 권면해 가면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때까지도 이곳은 비교적 안전하였다.

그러나 2년 뒤인 1868년에는 포졸들이 마침내 죽령 교우촌을 찾아내게 되었고,

김 루카는 얼마 되지 않아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경주로 압송되어 가는 동안 김 루카는 동료들의 권면을 잘 받아들여

순교하기로 결심하였다. 실제로 그는 경주 진영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굳건하게 신앙을 증언하였다.

 

이어서 김 루카는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당하고 신앙을 한결같이 증언하였기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런 다음 군대 지휘소가 있는 장대(將臺, 현, 경남 울산시 중구 남외동)로 끌려 나가

이양등 베드로 회장과 허인백 야고보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그때가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9세였다.

 순교 당시에 김종륜 루카는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그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 야고보의 아내 박조예에 의해 거두어져 비밀리에 안장되었다.

 

김종륜 루카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