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 저런일/마음의 양식

크리스마스 이브의 1일간 휴전

여울가 2017. 12. 24. 23:58

크리스마스 이브의 1일간 휴전 (1944년 이야기)

 

프리츠 빈켄(Vinken) 이라는 독일인이 어려서 겪었던 잊지 못할 감동적인 실화로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소개되었던 에세이 입니다.(원문을 축소한 것임)

 

1944 년 12월 이른바 발지 전투(Battle of Bulge)로 알려지던 서부전선 대회전

당시에 벨기에 국경 부근 독일 휘르트겐 숲속 작은 오두막 집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헨에서 살다가 연합군의 계속된 공습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피난온 열두살 먹은 프리츠 빈켄은

어머니와 함께 이곳 한적한 오두막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야포의 포격, 폭격기 편대의 비행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던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때였습니다.

 

비록 쉴새없이 포소리가 이어지는 전쟁터이기는 하였지만

민방위 대원으로 근무중인 아버지가 돌아오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빈켄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때 느닷없이 오두막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촛불을 끄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눈쌓인 겨울 나무들을 배경으로 철모를 쓴 병사 둘이 유령처럼 서 있었고

,조금 뒤 눈 위에는 부상을 당한 병사가 누워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빈켄은 거의 동시에 그들이 적군인 미군들 임을 알아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빈켄의 어깨 위에 한손을 올려놓고

 잠시동안 가만히 서 계셨습니다.

 

무장한 그들은 구태여 우리 허락없이라도 강제적으로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그냥 문앞에 서서 잠시 쉬어가게 해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중 한 사람과 프랑스어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부대에서 낙오한 그들은 독일군을 피해 사흘이나 숲속을 헤맸다는 것이었고,

동료는 부상까지 입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철모와 점퍼를 벗고 나니 그들은 겨우 소년티를 벗은 앳된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적군이었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아들 같은 소년으로만 보였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께서 "들어오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부상자를 들어다 빈켄의 침대 위에 눕혔습니다.

 

부상자를 살펴보러 가면서 어머니가 빈켄에게 말했습니다.

 

"저 두 사람의 발가락이 언 것 같구나. 자켓과 구두를 벗겨 줘라.

그리고 밖에 나가 눈을 한 양동이만 퍼다 다오"

 

빈켄은 어머니 말씀대로 눈을 퍼와 그들의 퍼렇게 언 발을 눈으로 비벼 주었습니다.

 

그 사이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이브때 쓰려고 아껴 두었던 수탉 한 마리와 감자를 가져와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가 흐른 뒤, 고소한 통닭 냄새가 방안에 가득 차자

 또다시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또 미군들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빈켄이 문을 여니

밖에는 네 명의 독일군이 서 있었습니다.

 

순간, 빈켄의 몸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적군을 숨겨주는 것은 최고의 반역죄로 즉결 총살감이었음을

 비록 어리지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프뢸리헤 바이낙텐(축 성탄)!"

 

어머니가 인사를 하자 병사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쉬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물론이지요...따뜻한 음식도 있으니 어서 들어오셔요."

 

막 구워지고 있는 통닭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던 병사들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작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이미 다른 손님들이 와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당신들의 친구는 아닐지 모릅니다."

 

그 찰나 독일군들은 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고

숨어서 문 밖을 살피던 미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방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순간....

어머니가 다시 침착한 태도로 말을 이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우리집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

당신들은 내 아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저 안에 부상당해 낙오한 미군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두가 배고프고 지친 몸입니다....

오늘 밤만은 죽이는 일을 서로 잊어버립시다. "

 

무거운 침묵이 계속되었고 아마도 그 자리의 어느 누구에게나

그것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것을 깨뜨린 것은 총소리가 아니라 어머니의 명랑한 목소리였습니다.

 

"뭣들 해요 ? ...

우리 빨리 맛있는 저녁을 듭시다.

총은 모두 이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아요."

 

그러자 젊은 독일군과 미군들은 동시에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총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갑자기 손님이 늘어난 관계로

저녁을 더 준비하기 위해 어머니는 빈켄에게 감자를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창고에서 식량을 찾는 동안 빈켄은 미군 부상병의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감자를 가득 안고 돌아와 보니 독일군 하나가

안경을 쓰고 부상당한 미군의 상처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위생병이군요? "

그러자 안경을 쓴 독일 병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아닙니다. 하지만 몇달 전까지 하이텔베르그에서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

 

그는 꽤 유창하게 들리는 영어로, 추위 덕분에 환자의 상처가 곪지는 않았다고

 미군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과도한 출혈 때문입니다. 쉬면서 영양을 섭취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서로 간의 적개심이 서서히 가시면서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식탁에 앉았을 때 다시 보니 나의 눈에까지도 군인들은 아주 어리기 보였습니다.

 

쾰른에서 온 하인츠와 빌리는 열여섯 살이었고,

스물 세 살 난 하사가 가장 나이가 많았습니다.

 

하사가 배낭에서 포도주 한 병을 꺼냈고,하인츠는 호밀 빵 한 덩어리를 꺼내 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그 방을 잘게 썰어 식탁 위에 놓고 포도주 반 병은

부상당한 미군 소년을 위해 따로 남겨 두었습니다.

 

식사 준비가 되자 어머니는 병사들을 식탁에 모아놓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이시여, 오셔서 저희들의 손님이 되어 주십시오"라는 구절을 읊조릴 때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러자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곳 전쟁터까지 오게된 병사들은

 그 순간 어린 소년들의 모습으로 돌아가 눈물을 훔치기 바빴습니다.

 

자정 직전 어머니는 문 밖으로 나가 함께 베들레헴의 별을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들 어머니의 곁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찾는 동안 그들에게서 전쟁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독일군과 미군들은 오두막집 앞에서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독일군 병사가 미군들에게 부대로 돌아가는 길을 상세히 가르쳐 준 뒤,

그들은 서로 헤어져 반대편으로 걸어갔습니다.

 

 

헨델 할렐루야 - 정명훈 지휘

https://youtu.be/KF1F4UoMk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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