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충절의 고장, 문화도시 영월이야기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

여울가 2018. 11. 19. 21:29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는

천혜의 감옥이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육지와 연결이 되어 있으나

육육봉이라는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다.

원래 지명은 청랭포였는데, 단종이 사시던 곳이라 찰 랭(冷)자를 사용하기

마땅치 않아서 령으로 고쳤다고...

 

울창한 송림은 100년~600년씩 자라고

있고 약700그루정도 된다,

육지 속의 작은 섬 청령포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지난 주말 친구들이 영월에 놀러와서

그냥 쉬겠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청령포에

갔다. 나도 이사온 이후에는 못 가봤기에

가 보고 싶었다.

 

기와집으로 복원된 단종어소와

궁녀,관노들이 기거했던 행랑채가 있고,

앞마당에는 1763년 영조의 친필이 음각되어진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세워져 있다.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라는 뜻이다.

단종어소를 향해 앞으로 엎드려서 자란

엄흥도소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우리나라 소나무 중 가장 멋있다는

관음송은 1988년천연기념물 제349호로

본래 관음송은 불교의 관음보살에서 유래한 관음소나무를 의미한다.

단종이 노산군이 되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나무에 걸터앉은 비참한 모습을 보았으며(觀),

오열하는 소리(音)를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관음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주장은

 후대에 만들어낸 설화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중에서 키가 가장 큰 나무이며,

주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이 나무의 종자에서 퍼져나간 나무들이라고 본다.

 

소나무 크기는 높이30미터, 둘레5미터로 지상에서 두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하게

자랐으며 수령은 6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단종의 흔적이 남아있는 돌탑은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를 그리며

주변의 막돌을 쌓아 올렸다는데 망향탑이라 불리운다.

 

단종 사후 이 청령포는 일반인들이 농사를 짓거나 훼손할 수 없도록

1726년 영월부사 윤양래가 금표비를 세웠다.

그 내용은 동서로 300척,남북으로 490척 그리고 차후에 진흙이 쌓여서 만들어진 땅도 마땅히 금지구역으로 한다.

 

청령포 강 건너에는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청령포를 바라보며

비통한 심정을 노래한 시조비가 서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