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충절의 고장, 문화도시 영월이야기

영월10경 중 제4경 '김삿갓 유적지'

여울가 2019. 3. 30. 20:37

*영월 10경 중 제4경 '김삿갓 유적지'

 

박물관 고을 영월에서

산세 좋고 물 좋은 곳에 위치한

김삿갓 문학관을 찾았다.

 

난고 김병연의 삶을 기록한 연구자료와 유물들, 작품 등이 전시된

기획전시실 및 일대기실,

그의 시대정신과 문학세계를 감상할 수 있는

난고 문학실로 구성되어 있다.

 

삿갓이 한자로 '립'이라서

예전 출판물이 김립(金笠)시집이라고 쓰여져

있는 게 보였다.

 

김삿갓 선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생기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분은

정암 박영국 선생인데, 그는 난고 김병연의 생애와 발자취를 좇아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특히 그가 반남 박씨라고 하니 반남이 고향인 난 더욱 반가웠다.

정암 박영국 선생이 수집한 김삿갓 연구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김삿갓 관련자료를 비디오로 상영하고 있다.

지난 해에 문학관을 재정비하면서

전자식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젊은 학생들에게도 상당히 흥미로운 관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난고 김병연은 영월 동헌 백일장에서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시제로 장원급제하였는데,

후에 어머니로부터 집안내력을 듣고 선천부사였던 조부 김익순을 욕되게 하였다는 큰 죄책감에 빠져서

하늘을 볼수 없는 죄인이라하여 삿갓을 쓰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방랑하게 되었다.

그때 그의 나이 22세였다.

 

김삿갓은 민중의 애환과 설움, 양반들의 부조리함을 해학적인 시로 표현하며

전국을 방랑하며 일생을 보냈다.

 

이곳에서는 매년 10월 초 김삿갓문화제라는 행사가 개최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영월군 문화관광해설사이신 김원식선생님은

김삿갓이 현대 세계로 다시 돌아온 이유 세가지를 말씀해 주셨다.

 

첫째, 나를 기억하라.

둘째, 나처럼 살면 요 꼬라지로 살게 된다.

셋째, 여러분은 나를 뛰어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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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고 김병연(삿갓)의 생애

 

金炳淵

난고(蘭皐), 김립

출생1807년(순조 7)

사망1863년(철종 14)

 

본관은 안동. 자는 난고(蘭皐),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 경기도 양주 출생.

 

평안도 선천(宣川)의 부사였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의 난 때에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으로 형 김병하(金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공부하였다.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은 홧병으로 죽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자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기고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김병연이 과거에 응시,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

이라는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을 조롱하는 시제로 장원급제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내력을 어머니에게서 듣고는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자에 대한 멸시 등으로 20세 무렵부터 처자식을 둔 채로 방랑의 길에 오른다.

이때부터 그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