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충절의 고장, 문화도시 영월이야기

(영월10경)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 영월 법흥사

여울가 2019. 6. 27. 18:07

영월 10경 법흥사는 사자산 아래

넓은 산자락을 깔고 앉아 있었다.

법고를 지나는 길바닥을 시멘트와 돌을

섞어서 새길로 조성을 했는데

난 새로 만든 이 길이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그냥 흙길로 놔 둘수는 없었을까?

많이 아쉬운 생각을 하면서

절 안으로 들어섰다.

 

법흥사는 영월10경으로 잘 알려져

있기에 늘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영월에서 43킬로...자동차로 한시간

거리이니 같은 군으로썬 꽤 먼 거리이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 있는데

양산의 통도사,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등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고

하며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고즈넉한 산길에 100년이 넘은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서 있고, 적멸보궁까지 올라가는

길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특히 적멸보궁 안을 들여다 보니

진신사리를 모신 곳 뒷면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부도와 석굴을 올려다 볼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다.

 

해질녘 아름다운 소나무숲과 고찰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그 기분은 세상의 모든

고요와 평화를 얻고 난 후의 기분이었다.

 

시원한 약수도 한사발 마시고

징효대사 보인탑비와 징효대사 부도,

꽃이 만개한 100년 밤나무를 뒤로 하고

맛있는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는

광전2리 마을회관으로 달렸다.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사자산(獅子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와 가사(袈裟)를 전수받아 643년에 귀국하였다.

 

그 뒤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하고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진신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사찰이름을 흥녕사(興寧寺)라 하였다.

 

신라 말에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도량으로 삼았다.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

그러나 891년(진성여왕 5) 병화로 소실되었고, 944년(혜종 1) 중건하였다.

그 뒤 다시 불타서 천년 가까이 소찰로서 명맥만 이어오다가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하였다.

 

1912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된 뒤 1930년에 중건하였으며,

1931년의 산사태에 옛 사지 일부와 석탑이 유실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대웅전·무설전(無說殿)·요사채 겸 공양실인

 심우장(尋牛莊)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적멸보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1939년에 중수하였으며,

 법당 안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있다.

 

이 적멸보궁 좌측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토굴이 있고

 좌측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넣고 사자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石函)이 남아 있다.

 

적멸보궁 뒤에는 진신사리를 봉안하였다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인 영월 법흥사 부도가 있다.

토굴은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흙으로 위를 덮었고,

봉토를 올리기 위하여 토굴 주변에 석축을 올렸다.

내부구조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조 또는 보수된 것으로 추정되며,

내부의 높이는 160㎝, 깊이 150㎝, 너비 190㎝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612호인 영월흥령사징효대사탑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2호로 지정된 징효국사부도(澄曉國師浮屠)와 패엽경(貝葉經)이 있다.

 

이 중에서 패엽경은 종이가 없던 시절에 인도에서 영라수(靈羅樹) 잎에 경전을 기록하였던 것으로,

 앞뒤 가득하게 범어로 쓰여져 있는 희귀한 것으로,

본래 금강산 마하연(摩訶衍)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었는데,

공산 치하를 피하여 한 승려가 남한으로 가지고 내려왔다.

 

그 후 30여년 동안 행방이 묘연하다가

부산의 한 절의 주지가 신도로부터 얻어 법흥사에 봉안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절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6호인 흥녕선원지가 남아 있으며,

 진신사리와 함께 패엽경을 친견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신도들의 발길이 항상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