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가톨릭 성지순례(국내)

추자도의 눈물삼킨 바위, 황경한 묘소

여울가 2019. 7. 29. 14:49

2019.7.26

 

우리들은 이틀째 여행일에는

제주항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추자도로 향했다.

 

추자도 가는 배는

아침 9시30분이고, 금,토,일요일에

돌아오는 배는 3시라고...

 

추자도에 가는 목적은

백서사건으로 순교하신 황사영과 정난주의

아들 황경한의 묘소참배를 하기 위함이다.

 

하추자도에서 내려서

정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모진이해수욕장에서 내려야 한다.

우리들이 그곳에서 내렸으면 고생을 덜

했을텐데, 어떤 분의 안내로 종점인

예초리에서 내렸다.

 

예초리에서 해안도로의 둘레길을 따라서

걷는 길이 좋았고, 풀숲이 우거진 좁다란 길을

따라 걷는 길도 좋았다.

 

그러나 황경한묘소는 안 보이고

어린 경한을 내려놓은 자리에

세워진 눈물의 십자가를 먼저 만났다.

바다 가까운 곳에 두살배기 아가 경한이

묵주를 들고 하늘을 향한 구유가 놓여있고,

우여곡절 끝에 황경한 묘소를 찾았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12시30분 버스를 놓쳤다.

 

봉고차를 끌고오신 의인 덕에 무사히

추자항까지 되돌아올 수 있었고,

굺을 줄 알았던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좋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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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은 1790년 정약현의 딸인 정난주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1800년에 아들 경한을 낳았다.

백서 사건으로 신유박해(1801년) 때 체포되어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후

홀어머니는 거제도, 부인과 외아들 경한은 제주도로 각각 유배되었다.

 

유배 길에 어머니는호송선의 뱃사공과 나졸을 매수하여 경한을 하추자도 예초리의 갯바위에 내려놓았다.

 경한은 오씨(吳氏) 성을 가진 한 어부의 아들로 키워졌다.

 

경한이 추자도에 떨어졌을 때 그가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에 따라

그가 바로 황경한임을 알게 되었고 오씨 아들로 키워졌다고 한다.

 

오씨의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 건섭과 태섭을 낳았는데,

그 후손이 아직도 추자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낯설고 외로운 유배지에서 생을 다한 황경한은 사망한 후

예초리 남쪽 산의 중간 산등성이에 묻혔다.

하추자도의 황경한이 살던 오씨 집은 1965년 불타 없어졌고,

그 집안에서 간직해 온 경한의 젖먹이 때 옷이나 가첩 등도 그때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주소는 제주도 제주시 추자면 신양리 산 20-1이고, 관할은 추자 공소로 전화 064-742-3777입니다.

 

제주교구는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하추자도에 있는 황경한의 묘소 주변 부지를 매입,

소공원을 조성하는 성역화를 추진하였다.

 

#제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