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서/2019 백두산

독립투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스러져간 여순감옥

여울가 2019. 9. 22. 23:45

9월 17일

 

안중근 의사 등 독립투사들을 가둔

뤼순 감옥(旅顺监狱)

 

중국에는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갇혔다가

스러져간 여순 감옥이 있다.

 

감옥은 회색빛벽돌과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러시아와 일본이 지은 것으로 색깔이 다르다고 한다.

 

한 방에 8명이 들어있었던 방에 두 개의

용기는 대변과,소변을 보는 곳이라고 한다.

 

죄수복도 무기수와 사형수가 색깔이 다른데

붉은색이 사형수가 입던 것이라고...

 

교수형을 하던 건물에 가니

그 모습이 실제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3개의 밧줄에 3명의 사형수를 한꺼번에

매달아서 아래쪽 통속에 꺾어서 넣은 뒤

뚜껑을 덮고 땅에 매장을 했다.

사형장 옆에서 사형수가 대기했던 작은

방이 두개 있어서 그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분들의 심정이 그대로전해오는 듯

했다.

 

두눈을 제대로 뜨고 볼 수 없을만큼

참혹한 장소라서 저절로 순국하신 분들을 위한

기도가 나오는 장소였다.

 

旅顺监狱(뤼순형무소)는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 성 뤼순시 뤼순커우 구에 있었던 감옥이다.

한국어 발음으로 여순형무소, 러일전쟁 이후 일본이 뤼순을 점령하면서

중국, 한국, 러시아인들을 더 수감하기 위해 1907년까지 증축하였다.

 

1906~1936년동안 수감자는 11개국의 항일운동가 약 2만여 명에 달하였고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 등이 수감되었다.

한국인으로는 독립운동가 안중근, 신채호,

이회영, 박희광 등이 수감생활을 했었다.

 

뤼순감옥을 중국 정부는 '뤼순 일아(日俄)감옥 구지(舊地) 박물관'으로 명명하여,

항일운동의 주요 국가 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해왔지만

군사기밀 보호 등을 이유로 외국인의 방문을 불허해오다

 2009년~2010년에 걸쳐 외국인에게 개방하였다.

 

2009년 중국 정부는 일본에 대응하는 대한민국정부와의 공조와 상호신뢰를 위해

전시실 우측에 600m2 규모의 '국제항일열사전시관'이라는 별도의 전시관을 만들었는데,

이곳에는 안중근 의사의 흉상을 세우고 그의 항일운동 사료와 기사들을 정리한 전시물들을 전시하여

사실상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전시관을 만들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과 우당 이회영 선생, 한인애국단에서 활동했던

유상근, 최흥식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흉상과 사료들을 소개하는 총 4개의 소규모 전시실로

나뉘어 전시하고 있다.

 최장기 수감자로는 박희광으로 20년을 복역한 후 출소하였다.

 

안중근의사는 1910년 3월26일 이토 히로부미 저격한 죄인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순국(사형)하였다. 그때 나이는 32세였다.

1905~1945년까지 우리의 항일투사들이 700여명 순국한 현장이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

https://youtu.be/FdDRiTWJ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