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경상도

충절을 지키다 스러져간 금성대군 신단

여울가 2020. 11. 21. 13:22

















붉은 충절이 서린 영주 금성대군 신단

금성대군 신단은 단종 복위운동 당시 위리안치로 갇혀있던 금성대군과 순흥부사 이보흠이 격문(대자보)을 만들었다. 이를 눈치 챈 시녀 금연이가 순흥부사 관노인 이동에게 이격문을 빼돌려 주었고, 이동은 이것을 들고 죽령을 넘어 조정에 갖다주게 되었다.

세조는 이런 격문을 받은 순흥부의 모든 백성은 역적이니 모두 죽이라는 명을 내렸고 700여호가 참사를 당했다.
이때 핏덩이부터 세살까지는 살려두라 하여 이 아이들을 빼앗아 다리 밑에 버렸고, 아이가 없는
다른 지방 사람들이 입양해서 키우게 되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말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아기가 네살 정도 되면 자신의 어렸을 때의 기억을 할 수 있어서 세살까지만 살려둔 것이라고 한 것인데
이때 순흥 안씨가 몰살하게 되었다.
남의 집에 양자를 들일 때도 4세 이전에 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집단학살이 이루어져 피가 죽처럼 흘러내렸다 하여 죽계천이 있고, 지금도 피끝마을이 존재하고 있다.

순흥안씨의 씨를 말린 것 같지만 순흥안씨 추원단에 가보니 인물도 많고 얼마나 번창한 가문이 되었는지
많이 놀라웠다.

금성대군 신단은 금성대군을 비롯하여 순흥부사 이보흠과 이때 참사를 당한 모든 분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봄과 가을에 이곳에서 향사를 올리고 있다.

#영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