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 등반길

설악산 종주 산행기

여울가 2006. 7. 4. 14:26

#연수 첫날(D-1일)
지금부터 한달 전쯤..
설악계곡등반 2박 3일 연수가 있음을 알리는 공문 한장을 받아 들고...
드디어 운명의 여신이 나를 설악으로 인도하는구나...
의기양양 연수비를 입급하는 순간부터 나의 행복은 끝,
고통과 걱정과 갈등의 순간은 시작되었도다...

과연 내가 설악을 등반할 수 있는걸까?
얕으막한 산을 오를 때 헉!숨이 가파오면...
안갈거야...아냐...못 가는거지...를 수십번,
골백번도 더 외치면서...
이럴 때마다 같이 연수를 신청한 이영순님의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만 가고...

연수가 시작된 첫날...
자양중에서 이론 강의는 시작되었다...
베낭 챙기기,나침반 사용과 독도법,등산 일반,산행 안내..
37명의 연수생을 5개조로 나누었는데 우린 4조에 배정...
각 조마다 강사1,남자2-3,여자4-5명으로...
우리 조는 강사1,남자2,여자5명으로 짜여졌다.
그리고 산행중 필요한 식사 메뉴를 짰는데
우린 삼겹살과 족발,된장국,꽁치 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

삼복더위가 있는 성깔, 없는 성깔 다 부리는 오후에
준비물을 챙기느라 대형마트를 서성이고...

#첫째날
이른 아침 부시럭 거리며 베낭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못 간다고 난리치더니 네가 드뎌 떠나는구나!!
설악아...내가 간다...기다려라...
잠실에서 9시30분 출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은신처로 유명해진 백담사를 구경한다...
난 어느 세월에 대통령 영부인 되어 다시 유배되어 이런 곳에서 살아보나?
이루어 질 수 없는 욕심이 들게 하는 곳...
절 앞에 흐르는 너른 계곡...
벌어진 입을 추스리기가 힘들다.

산의 끝자락에 걸터 앉아 듣는 생태교육,...
설악산의 우점종이 신갈나무(참나무과)라고...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는 잎파리 뒷면의 솜털 유무로 구별한다고...
또 숲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야생화들의 이름붙여진 유래등등 수많은
지식들이 귓속을 맹렬히 공격하고...
작고 예쁜 야생화들..노루오줌,꿩의 다리,국수나물,네모쓴플,솜다리....
영시암에 들러 마른 목을 달래가며...
첫밤을 지낼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
제주에서 태어나 설악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
그 흥을 못 이겨 입은 채로 계곡물에 풍덩..
수정 계곡을 오염시키고야 말았으니...
하늘에 총총 박힌 별들과 계곡 물소리...
하얀 이를 드러낸 미끈한 바위들과 밤새도록 조잘조잘...
뜬 눈으로 밤을 꼴깍 새고야 말았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오지 않는 잠)

#둘째날
7시30분 수렴동을 출발...
우리나라 가을 단풍 사진의 대부분을 차지하리만큼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는 가야동 계곡을 걷는다...뛴다...네 발로 긴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의 구분을 도저히 할 수 없어
자칫 굴러온 돌을 밟았을 때의 삐끄덕 거림에 깜짝 깜짝 놀래가며..
뿌리 채 뽑혀서 널부러진 고목들의 나신과 큰비의 위력을 한눈에 알게하는
집채만한 바위들의 아슬아슬한 걸침들이 이곳은 비가 오는 날엔
절대로 올라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 초보에게 드는 계곡...
수직으로 깎아지른 수직 암벽 천왕문...
길고 긴 암반 위를 흐르는 와룡연...
오른쪽으론 용아장성의 암봉들이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배가 고프다..점심시간...
찐계란 2개를 온손으로 으깨어 라면국물 맛을 한층 깊게 하는
우리들의 팀장 편선생님...
계곡물에 발 담그고 먹는 라면 맛이라니...

희운각 대피소에 오후1시30분 도착...
여기까진 참으로 견딜만한 코스였다...
2시부터 시작된 대청봉 을 향하여 진군...
우리의 위대하신 조장님의 칭찬과 협박과 스틱의 힘으로
수직에 가까운 돌길을 네발로 기다시피 오르고 또 오르고..기고 또 기고...
내 정신이 아니고 완전히 혼미상태..무아지경...
1,550미터의 소청봉에서 화끈한 바람 여신이 우릴 맞이하는데...
건너편 봉우리들아..능선들아..산들아..바다야...
내가 왔다...설악에...외치고 또 외치고...

잘 지어진 중청 산장에서 가지고 간 포천 막걸리 한병이
춤을 춘다..아아!!아자!!4조 홧팅!!!이라고...

세찬 바람을 견디며 살려고 이름마저 누워버린
눈잣나무,눈주목들의 사열을 받으며 마지막 힘을 다해 대청에 오른다...
안개인지 구름인지..이슬인지..비인지..
너울 너울 춤추는 하얀 군무와 더불어 우리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야호!!! 대청봉을 접수했다....
1708미터...

하산길에 만나는 분들에게 수고하십니다...
인삿성도 바르지...가진 자의 여유를 맘껏 누리면서...
희운각에 내려와 족발을 썬다..
갑오경장 이후 이처럼 맛있는 족발은 첨이다..
다른 조에게 이 족발들을 나눠줄 수 있는 선행심이 생긴 것도
모두 대청을 올랐기 때문에 겨우 생긴 거였으리...

#마지막
희운각 산장의 잠자리는 비좁지만 잠은 잘 잤다..
이제는 하산이다...
설악아 잘 있거라...
남들은 다시 오마 기약하겠지만 나로선 다시 못올 설악이기에
지나치는 돌하나,풀포기 하나도 놓치지 못하리니...
천당 폭포를 지나 오연폭포까지..
양폭산장을 지나 귀면암까지...
사람을 겁내 할 줄 모르는 다람쥐와 친구하며..
비선대를 지나 와선대에서 우린 마지막 회포를 풀기로...
동동주에 해물파전,감자 부침,도토리 묵...
3일동안 우리를 지켜주던 날씨마저 섭섭해서 눈물을 흘려주니
그것마저 고마워서 모두 비옷들을 꺼내입고...

돌아오는 차속에서 읊어주시던 홍석원팀장님의
'설악시'한구절...

나는야 산이 좋더라.
파아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야 산이 좋더라.
푸른 동해가 내려다 보이는
설,설, 설악산이 나는야 좋더라... (200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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