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서/2007년 이스라엘

이스라엘(1)-마리아 엘리사벳방문성당,세자요한,예수님탄생성당2007.1.3)

여울가 2007. 6. 23. 12:21

벌써 5개월이 흘렀다.

성지 이스라엘을 다녀오고 난 후

마음이 지치고 생활에 쫒겨 순례기를 쓸 여유를 갖지 못했다.

 

마음으론 더 잊어버리기 전에 써야 할텐데

늘 생각만 하다가  모처럼 한가로움을 즐기다

순례기를 시작해 본다.

기억은 가물거리고 따끈함도 모두 식었지만

여행중의 메모를 들춰가면서 써 보고자 한다.

 

2007년 1월 2일

이해욱프란치스코 신부님과 공동체 식구38명은 6개의 조를 편성하고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타슈켄트 공항은 전에도 한번 머문적이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답답함이 낯설지가 않았다.

눈이 내린  우즈베키스탄의 정경을 뒤로 하고

다시 텔아브비를 향해 나르는 비행기 아래로 펼쳐지는

눈덮인 산들과 저무는 일몰에 환호성을 지으며

르네상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2007년 1월 3일

맨 처음으로 방문할 곳은 마리아 엘리사벳방문성당이다.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안드레아 선생님께서는

볼것보다는 성서의 메세지를 묵상하며 다니자.

매일 매일 피정을 하는 마음으로 순례를 하자고 당부하셨다.

이스라엘은 산위가 편평한 지형이라서 산위에 살수록 부자라고

가이드 모세형제님이 설명하신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부자이고

 아래로 내려 갈수록 하위계층이 살고 있단다.

그래서 성서에도 산위에 있는 마을이 드러나리라...

 

에인케렘 계곡은 숲이 우거져 있고 풍요로운 동네인데

이곳에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이 살고 있었다고.

이스라엘에서 가풍있는 집안이었을거라는 것과

20년 전에 이곳의 어느 집에서 금부치가 쏟아져 나온걸로 미루어보아

혹시 즈가리야가 금고를 관리하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해 본다고...

 

방문성당을 오르는 우리는 묵주기도를 바친다.

환희의 신비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2단,3단,4단,5단을 소리맞춰 바치면서 언덕을 오르는 동안

2천년 전의 성모님의 마음을 상상해보고 잠시 성모님이 되어본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이곳에서 약3개월을 머무시면서

엘리사벳의 시중을 들었다.

2층 성당 건물중 아랫층이 여인들이 기거하는 공간인데 우물터에서

성모님의 발자취를 찾아보기도 한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방문 성당의 길 건너편에 자리잡고 있는

엘리사벳의 아드님 세례자요한의 탄생 성당...

신앙의 선각자 세례자 요한이 탄생한 곳...

생후 8일만에 할례를 받는 모습과 세례자 요한이

낙타털옷과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혁대를 두르고 외치는 모습의 그림이 있었다.

유대인 선지자들의 외치는 목표는 단하나,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하느님께 순명하던 시기로 돌아가라...

광야의 시기로 돌아가라...고

광야의 생활모습을 담은 유목민의 옷차림으로

엘리야 예언자도 세례자 요한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신다.

 

예수살렘의 동쪽에 위치한 베다니아 마을...

동예루살렘은 구시가지로써 아랍계가 살고 있고

서예루살렘은 신시가지로 유대계가 살고 있는데

이것을 시멘트벽으로 막아놓은 분리장벽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죽은 나자로를 살려 주셨던 예수님...

이곳에 마리아 마르타 나자로 성당이 있다.

마리아와 마르타는 그당시 서민이었지만

예수님이 가끔 휴식을 취하러 이곳에 들리시면

극진한 정성으로 모셨다는 이야기가 누가복음10장,요한복음11장에...

가는 곳마다 성서를 펼치시고 그곳에 얽힌 성서를 봉독해 주시는 모세 가이드님

덕분에 너무 많은 묵상에 잠기다 보니 늘 분위기가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나자로의 무덤이 근처에 있다고 했으나 지금은 개방을 하지 않아 볼수 없었다.

오후가 저물어가는데 팔레스티나 지역에 있는 예수님 탄생성당엘 간다.

이곳은 동방정교의 그리스정교가 다스리는 성당과 카톨릭성당이 공존하고 있었고

검은 사제복의 동방정교 사제들이 미사를 집전하고 있었다.

탄생 성당 지하에 주님의 탄생을 뜻하는 별이 있고

우린 줄을 서서 그 별에 입맞춘다.

 

이 성당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아우구스타 헬레나가

AD324년 십자가 형태의 탄생성당을 지었는데

화재로 소실되었고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는 1,7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잘 보존되 있었다.

단지 보존을 위해서 모자이크 위로 마루를 설치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지금의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531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이 거룩한 곳에 말을 타고 들어가는 것을 막고 훼손을 줄이기 위해

아주 작은 문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었는데

누구나 이곳을 들어갈 사람은 고개를 숙여야 하고

어린 아이처럼 낮아지고 순수하며 겸손해지라는 뜻으로

겸손의 문이라고 불린단다.

 

 

 

 카타리나 성당의 지하 에로니모 성인의 서재에서 첫 미사를 드렸다.

로마의 촉망받던 에로니모 성인께서 교황 선거에서 실패하자 로마 생활을 정리하고

이 지하 동굴 서재에서 30년 동안 희랍어로 된 성경을 번역했다고 한다.

 

 

 미사가 끝나고 나니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찾아간 곳은 목자들의 들판 성당...

지난 성탄절에 장식한 구유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목자들이 어둠과 비를 비해 양을 피신시키며 쉬던 동굴들이

지금은 주님을 모시는 성전 역할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