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豊南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각 - 사적 제339호
경기전의 경역은 정전(正殿)과 조경묘(肇慶廟)로 나뉜다.
정전(보물 1578)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보물 931)을 봉안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이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경기전 조경묘 도형의 그림을 보면 지금은 없어진 전사청(典祀廳) ·동재 ·서재 ·수복방 ·제기고 등 부속건물들과
세종대왕
조선 태조(재위 1392∼1398) 이성계의 전신정면의좌상(全身正面椅坐像)- 보물 제931호
1987년 12월 26일 보물 제93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으로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경기전(사적 339)에 봉안되어 있다.
1872년(고종 9) 조중묵(趙重默)이 낡은 원본을 그대로 새로 옮겨 그린 그림이다. 견본 세필채색화(絹本細筆彩色畵)로 150×218㎝.
태조 이성계는 함경남도 영흥(永興)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중결(仲潔), 호는 송헌(松軒), 본관은 전주이다.
고려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 도총중외제군사(都摠中外諸軍事), 삼군도총제사(三軍都摠制使) 등을 지낸 뒤
1392년 공양왕(재위 1389∼1392)을 양위시키고 조선의 태조가 되었다.
조중묵은 조선 후기의 화가이다. 태조 어진은 조중묵이 모사(模寫)한 익선관본(翼善冠本)으로,
비록 옮겨 그린 것이기는 하나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 어진이다.
어깨와 앞가슴에 황룡을 수놓은 청포(靑袍)를 입고, 용상(龍床)에 정면을 바라보며 앉은 태조의 모습을
공식적인 어진도상(御眞圖像) 형식으로 그렸다.
《태종실록》에 따르면 경기전에 어진을 봉안한 것은 1410년(태종 10) 무렵이다.
임진왜란 때 정읍 내장산을 거쳐 아산 등지로 피난시켰다가 1597년(선조 30)에는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별전에 안치하기도 했다.
1614년(광해군 6)에 경기전이 중건되자 묘향산에서 전주로 이관해 봉안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赤裳山城)으로 옮겼으며, 1767년(영조 43) 정해대화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피난하기도 하였다.
그 뒤 1872년 어진이 너무 낡아 새로이 모사하여 봉안하였다.
입체감을 나타낸 익선관과 얼굴을 음영법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조선 전기 초상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태조 이성계
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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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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