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500년 유교전통의 남녀유별 유풍은 한국교회건축만의 독특한 유형인 ㄱ자 예배당을 탄생시켰다.
ㄱ자형의 남북쪽은 남자석, 동서쪽은 여자석으로 구분하고
중앙에는 휘장을 쳐 남녀가 서로 볼 수 없게 구조된 ‘ㄱ’자형 교회건물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금산교회와 전북 익산시 성당면의 두동교회 두 곳뿐이다.
두동교회의 설립과정에는 3천석지기 부자 박재신을 빼놓을 수 없다.
두동마을 사방 삼십리 지경에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날 수 없었다고 할 만큼 대단한 부자였던 그는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마을5백호의 세금을 대납해 주고 기근 때는 주민들을 구제하는 등
자비를 베풀어 마을입구에 그의 비석도 서 있다.
1896~1915년까지 이 지역에 처음 복음을 전한 선교사는 해리슨((W. B. Harrison, 하위렴)과 김정복 및 안신애 전도부인이다.
박재신의 어머니와 아내(한재순), 그리고 고모인 박씨 부인(월남 이상재의 막내아들인 이승준의 처) 등이
안신애의 전도를 받고 3킬로미터 떨어진 부곡교회까지 다녔는데,
당시 손이 귀했던 박재신은 “예수 믿으면 집안이 복을 받고 자식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여자들이 교회당 가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마침내 부인이 임신을 하고 만삭이 되자,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 처소로 내놓았고
1923년 5월 18일, 구연직 전도사(해방 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역임)를 모시고
첫 예배를 드린 것이 두동교회의 시작 되었다.
마침내 아들 ‘요한’이 태어나고 박재신의 후원으로 두동교회는 1년 사이 교인이 80명으로 증가하여
박재신이 곳간으로 쓰던 ㄱ자형 창고를 예배처소로 사용하였고,
교회 안에 ‘배영학교’(후에 성영학교로 바뀜)도 세웠다.
그러나 1929년 아들이 병으로 죽자 박재신은 마음이 변하였고
지주의 눈치를 보던 교인들은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 20여명만이 믿음생활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고모상을 당했는데 출상일이 주일이라 3일장을 못하고 4일장을 해야 한다는
전도사님과의 의견충돌로 박재신은 급기야 자기 집에서 예배를 볼 수 없도록 하였다.
이에 교인들은 부근에서 유일하게 박재신의 땅이 아닌 현 위치에 새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1929년 6월 안면도 소나무를 실은 배가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소나무들이 두동리 근처 성당포까지 떠내려 오자, 교인들은 그 나무를 헐값에 사들여
100평 채소밭에 ‘ㄱ’자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
두동교회는 남자석이 길고 강단이 남자석을 바라보고 있는 금산교회와 달리,
두 공간을 똑같은 크기로 만들고 강단도 중간에 배치하는 등 남녀유별 속에서도 남녀평등을 추구하였다.
또한 1933년까지 초등과정인 성영학원을 운영하며 민족혼과 독립정신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강대상 밑에 공간을 두어 설교 중 일본순사가 검문을 오면 숨을 수 있도록 했다.
강대상에서 보면 왼편에 위치한 여자 신자 자리
강대상에서 보면 오른쪽에 위치한 남자 신자 자리
강대상에서 바라보면 남자, 여자 자리를 모두 몰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강대상 목사님이 서 계시는 자리의 마룻바닥을 열면 은신처가 나온다. 평소에는 방석으로 덮여 있다.
한편 ㄱ자로 꺾이는 모서리의 안쪽 마당에 예배당 건립 당시 인근산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 한 그루가 교회역사와 함께 서 있다.
6·25전쟁 때는 교회에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들어섰고 교회 마룻장 아래 만들어진 작은 밀실은
당시 청년들이 몸을 숨기는 장소이기도 했다.
현재 교회 내부는 80년 전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장마루가 깔린 바닥, 의자와 강단, 그리고 인공시절, 청년들이 몸을 숨겼던 마룻장도 예전 그대로다.
1964년 5월 현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2002년에는 구 예배당인 ‘ㄱ’자형교회가 전북도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지정 한국기독교사적지 제4호로 지정되었다.
두동교회가 태동되고 부흥하기까지에는 부자 박재신의 공이 컸지만,
그의 뿌리 깊지 못한 조건부 신앙심은 돌작밭에 떨어진 씨와 같았다.
반면 소작농 교인들의 뿌리 깊은 신앙은 지주의 말을 거역하면서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교회를 설립하고 지켜냈다.
(본문 내용은 http://blog.daum.net/kjpark/175에서 퍼옴)
세월을 같이 살아 온 풍금 2대...
90년 가까운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소나무 서까래...
나무로 엮어 걸어 놓은 종탑에서는 금방이라도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가 울릴 것 같다.
새로 지는 교회 건물 모습
교회 입구에 있는 두레박 우물은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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