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왕산은 1976년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북 제일의 명산이다.
산의 모습이 마치 돌로 병풍을 친것 같다하여 석병산이라 불리었으며,
주왕산이라고 불리게 된 사연은 신라시대 왕족인 김주원이
왕위를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수도했다는 이야기와
중국 당나라 때 진나라의 후손 주도가 스스로를 주왕이라고 칭하고 진나라를 회복하려다 실패하여
이곳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이때 당나라 조정에서는 반역자 주도가 신라 땅으로 도망갔음을 알고,
신라 조정에게 주도를 잡아 줄 것을 부탁해 왔다.
이에 마일성 장군이 지휘한 신라 토벌군에 대패한 주왕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서 주왕굴 속으로 숨었다.
어느 날 그는 세수를 하기 위해 굴 입구로 나왔다가
마 장군의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한 많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하였다.
그 피가 계곡물을 따라 빨갛게 흘렀는데
이듬해 봄에 이 골짜기에 전에 보지 못한 빨간꽃이 피었다고...
그 꽃이 지금도 이곳에서 보호하는 수달래(산철쭉)란다.
주왕산은 매봉산, 일월산, 백병산, 통고산, 백암산, 보현산 등 1000m를 웃도는
고산준령과 함께 낙동정맥을 이루고 있다.
높이는 720m에 불과하지만, 튼실한 자연생태와 기묘한 풍광에서 손색없는 큰 산이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뽑혔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는 깃발바위,
일명 기암(旗岩)이 대전사 뒤에 우뚝 서서 관광객들의 혼을 빼놓는다.
일설에는 신라 토벌군에 쫓긴 주왕이 자신의 군사력을 속이기 위해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했지만
신라의 마 장군은 여기에 속지 않고 화살을 쏘았다.
이에 마 장군은 바위임을 알아채고 일거에 공격,
주왕의 군사를 격파한 뒤 대장기를 꽂았다.
이에 기암이란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급수대-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였으나,
때 마침 그가 왕도인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인하여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올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산 위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
그 후로 이곳을 급수대라 이름하였다.
시루봉 - 앞에서 보면 마치 우랑우탄의 얼굴같이 보이는 시루봉은
다른 쪽에서 보면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는데 신선이 내려와서 불을 지펴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학소교.....
제1폭포
용틀임이 느껴지는 제1폭포의 전경
말벌들이 바위 절벽에 집을 지었네...
학소대-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절벽 위에 청학과 백학 한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하여 학소대라고 불린다.
어느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빡을 잃은 청학이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곳 자하성은 주왕이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대전사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가로막은 돌담으로 길이가 12km에 달하였다.
이 성은 주왕굴을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 돌문과 창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형체를 찾아볼 수 없고 곳곳에 부서진 성터의 자취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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