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서원은 풍기군수였던 신재 주세붕 선생이
고려말의 유현인 안향 선생의 연고지에다
중종37년(1542) 사묘를 세워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다음 해에는 학사를 건립하여 백운동 서원을 창건한데서 비롯되었다.
명종 5년 퇴계 이황 선생이 풍기 군수로 재임하면서
나라에 건의, 왕으로부터 소수서원이란 사액(賜額)을 받게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림고등교육기관(한국 최초의 사림대학)이 되어
퇴계 선생의 제자 대부분을 포함하여 4천명의 유생을 길러낸 바 있다.
이곳에 주향된 회헌 안향(1243~1306)선생은 도첨의 중찬 등을 거치면서
문교진흥에 진력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이시며, 동방 신 유교의 비조이시다.
동방성리학의 유맥은 다음과 같다.
공자(집대성)-주자(주자학, 신유교)-안향(주자학 도입)
-정도전)통치이념)-주세붕(서원건립,계승)-이황(성리학)으로 이어진다.
소수서원 경내에는 국보 제111호인 회헌 초상과 보물 5점,
도 유형문화재 3점을 비롯한 유물. 전적 등이 소장되어 있다.
학자수림 - 겉과 속이 모두 묽다하여 젃공이라 부르며
3백년에서 길게는 천년에 가까운 적송나무 수백그루가 서원 주변을 뒤덮고 있다.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이 소나무들을 학자수(學者樹)라고 부른다.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 제59호) - 통일신라 작품.
절에서 석조지주 가운데 기둥을 높이 세워 깃발을 걸었던 곳이다.
(단종복위 실패로 세조3년에 숙주사 절은 소실되고
소수서원 입구에 그 흔적만 남아있다.)
백운동 경(敬)자바위
-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이라는 글씨는 퇴계 이황 선생 글씨로 전해오고,
붉은색의 敬자는 신재 주세붕 선생이 직접 써서 새긴 것으로 신재집에 전해오며,
유교의 근본사상인 경천애인의 머릿글자이다.
세조3년(1457년)10월 단종 복위 거사 실패로
이 고을 영주 순흥 사람들이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는 참화를 당하게 되어,
그때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죽계를 따라 10여리 흘러가 멎은 곳을
지금도 피끝마을이라고 부른다.
참화 때 희생당한 도호부민들의 시신이 이곳 죽계천에 수장되면서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울음소리가 들려 당시 풍기 군수였던 주세붕이 새긴 글씨에
원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붉은 칠을 하고 정성들여 제사를 지냈더니
그 후로 울음소리가 그쳤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정축지변: 세조(수양대군)가 단종임금(노산군)을 쫓아내고 왕의 자리에 오르자,
세조 3년인 1457년 그의 친동생인 금성대군이 반대하여,
이곳 영주 순흥으로 유베를 와서 단종 복위운동을 펴다가
사전에 탄로가 나서 많은 이들이 희생된 사건
소수서원의 소나무들은 서원 쪽을 향하여 몸을 기울이고 있어
보는 사람들이 소나무도 예를 갖춘다며 신기해 한다고...
경렴정 -
신재 주세붕이 창건, 서원 담밖의 풍광이 수려한 곳에 위치하여 시연을 베풀고,
호연지기를 가꾸던 곳이다.
(현판의 글씨는 주세붕이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성공묘(보물제1402호) :
우리나라 성리학의시조로 불리는 안성공 회헌 안향의 위패를 모신 사묘로
1542년 주세붕이 세웠다.
후에 안보와 안축, 주세붕을 함께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9월 초정일에 제(향사)를 지내고 있다.
서원은 보통 전학후묘(前學後廟)이나 이곳은 동학서묘(東學西廟)이다.
祠라 하지 않고 廟로 격을 높여 부른 것은 흔치않은 일이다.
*사(祠) : 일반인의 위폐를 모신 곳
*묘(廟):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인격이 높은 국부격 인물을 모신 곳
강학당(보물 제1403호)- 이곳은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던 곳이다.
사방으로 툇마루를 둘러놓도 배흘림기둥 양식이 특이한 구조임.
최초의 사립대학
일신재와 직방재-
서원의 원장과 교수의 집무실이다.
[대학]에서 '일신'을 땄으며, [주역]에서 '직방'을 따서 게첨하였다.
*선비는 학문을 통해 직방으로 속(인격)과 겉(품행)이 익어야 참 선비(선달)가 되고,
겉만 익다가 말면 건방(乾方)이 들어 결국 건달(乾達)이라는 실패자가 된다.
장서각 - 오늘날의 대학 도서관으로 임금이 직접 하사하신
[어제 내사본]을 비롯하여 많은 장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서책은 좌우지선의 예를 따라 으뜸자리에 둔다고 스승의 숙소 우측에 세웠다.
영정각 - 서원에 영정각이 있는 것도 매우 특이한 일로
회헌 안향, 신재 주세붕, 회암 주희, 오리 이원익, 한음 이덕형, 미수 허목 등
보물급 영정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해시계 - 바위의 구멍에 막대기를 세워놓고 그 그림자를 보고 시각을 알아 보았다.
학구재와 지락재
- 유학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 자리로 학문의 숫자인 3을 상징하여 세칸으로 꾸몄고,
공부를 잘 하라는 뜻으로 건물 입면에 工자형으로 지어져 있으며,
스승의 그림자를 피해 뒷물림하여 지었으며,
방바닥의 높이도 스승 집무실보다 한자 가량 낮게 지어져 있다.
(토방의 높이를 보년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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