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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경주]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 첨성대

여울가 2012. 1. 25. 22:59

첨성대는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이다. 정확한 건립년도는 알 수 없으나

 <삼국유사>에 선덕여왕(재위 632~646) 때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정사각형의 기단 위에 30㎝ 두께의 돌 362개를 27단으로 쌓아 올린

술병 모양의 형태이며, 한가운데에는 네모난 창이 뚫려 있고,

맨 위에는 2단의 정자석을 올려놓았다.

이 정자석 위에 혼천의와 같은 관측기구를 설치하고

별을 통해 동지·하지·춘분·추분 등의 24절기를 측정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에서 현존하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천문대이다.

첨성대는 천문현상을 관측하던 곳이 아니라는 의견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첨성대에는 문이 없고 맨 위의 관측 장소가 비좁기 때문에

천문대로는 유용하지 않았으며, 그보다는 제천의식을 하기 위한 제단이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첨성대가 만들어진 후 천문현상이 더 구체적으로 기록되었으며,

기록의 양도 그 이전의 같은 기간보다 5배 가까이 많아진 점,

첨성대의 모습이 조선의 천문대였던 관천대와 흡사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천문 관측대로 추정하고 있다.

 

첨성대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내물왕릉과 가깝게 자리잡고 있으며, 높이는 9.17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긴 하나 거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