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서/2013 태국 치앙마이·치앙라이

[태국/치앙마이]북방의 장미라는 치앙마이에 다녀 오다.

여울가 2013. 5. 16. 13:11

여행을 가기 전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간다고 했다가 안 간 사람, 바다가 있는 곳은 죽어도 싫다는 사람,

빠듯한 일정을 소화할 수 없다는 사람...등...

게다가 여권을 잃어버려 함께 출발을 하지 못한 사람까지..

 


우리나라는 1월이지만

태국은 한 여름 날씨였다.

방콕에 이어 두번째 방문하는 태국인데 역시 사원의 나라...

 

치앙마이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유의 매력을 간직한 도시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부한 열대우림을 배경으로

고유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소수민족의 독특한 문화가 펼쳐진다.

`북방의 장미`라는 별칭에서 느낄 수 있듯 묘한 매력을 갖고 있는 곳이다.

 

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치앙마이는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750㎞ 떨어져 있다.

버스로는 1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한다.

방콕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를 보이는 반면

300m의 고원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이보다 5~10도 정도 낮은 기온을 보여 활동하기에 좋다.

역사적으로 치앙마이는 1296년 란나타이 왕국의 맹라이 왕에 의해 건설되었다.

1345년 치앙라이에 이어 란나타이의 두 번째 수도가 되었고,

 600년 가까이 존속된 란나타이 왕국의 수도였으며 16세기까지 번창했다.

13세기 초 란나왕국이 설림될 무렵의 태국북부는

란나타이,수코타이, 그리고 파야오 이렇게 3국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 중 수코타이는 태국 최초의 통일왕궁이 될 만큼 번성을 누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란나타이 왕국이 멸망해 아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연합체 형태로 계속 존속해 왔던 것이다.

물론 그 뒤로도 버마의 속국이 되었다가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이 강성해 지면서 다시 버마와 아유타이 사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어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1939년 란나의 마지막 통치자가 죽자 태국 정부에서 주지사를 보내 완전히 편입되었다.

이곳은 넓은 분지가 조성되어 있어 농업이 특히 발달했다.

차오프라야강의 지류인 핑강이 도시를 지나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치앙마이 관광의 백미는 수천 개에 이르는 불교사원과

 열대 우림에서 즐기는 코끼리 트레킹, 고산족 문화체험

그리고 다양한 코스에서 즐기는 골프다.

우리나라에서도 이곳으로 골프치러 오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한다.

 

불교사원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구시가지로 향한다.

1000여 개의 크고 작은 불교사원이 시가지에 흩어져 있다.

왓 프라싱과 왓 체디루앙은 치앙마이 최고의 불교사원으로 꼽힌다. 

 

5박6일 동안 일정이 몹시 여유로워서 매일 맛사지를 받기도 했고

음식도 우리 입맛에 대체적으로 맞았다.

단지 새벽길에 탁발 행렬을 보기  위해 나 혼자 호텔을 나왔다가

너무 깜깜한 거리 탓에 구멍난 하수구에 오른쪽 다리가 허벅지까지 빠져서

심한 상처를 입었고 한달 이상 치료하는데 고생을 했다.

내겐 악몽의 순간이었지만

지나놓고 보니 이 모두가 추억인 것을...


 

 

 

 

 

 

 

 

 

 

 

 

 

 

 

 

 

 

 

 

 

 

 

 

 

 

 

 

 

 

 

 

 

 

                                           트럭택시에 판자 두개가 의자로 놓여 있다...쏭태오라고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