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서/2019 백두산

고구려 19대 광개토대왕의 혼을 찾아서...

여울가 2019. 9. 23. 00:40

9월 20일

 

#광개토대왕비

 

길림성 집안시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광개토태왕릉에 갔다.

 

다알리아가 가는 길에 활짝 피어있는 우산처럼 생긴 나무길을 따라서

걷다보니 지붕이 우뚝 솟은 건물이 보인다.

 

광개토대왕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놓은 집은 사면이 유리로 되어있다.

유리 밖에서는 사진 촬영이 허가되고 있으나

유리문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불허하였다.

공안 한사람이 지키고 서 있다.

 

이 비석은 고구려의 제19대 왕인 광개토 대왕(재위 391~413)의 업적을 기리고자,

아들 장수왕이 414년에 세웠다.

화강암 대석 위에 세운 비는 높이 6.39m,

무게는 37톤에 달한다.

한 면이 1.35~2m에 달하는 사면체 응회각력암에 총 44행 1,775개의 글자를

어른 주먹만 한 크기로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머리에는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부터 광개토 대왕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고구려가 계승 · 발전되어 왔는가를 소개한다.

두 번째 부분은 광개토 대왕의 정복 활동을 연대순으로 기록했다.

세 번째 부분에는 무덤을 지키는 수묘인의 출신지와 차출 방식 및 수묘인의 매매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새겨 놓았다.

 

인위적으로 다듬어 규격이 딱 떨어지는 비석이 아니라서 더 웅장하고 자유로운 기개가 돋보인다.

그 자연스러운 형태에서 고구려인들의 자유롭고 호방한 기질을 엿볼 수 있다.

 

#광개토대왕릉(好太王陵)

 

광개토대왕비에서 10여분 더 걸어가면

광개토대왕릉이 나온다.

이 릉은 도굴범들이 모두 도굴을 해 가서

왕과 왕비의 것으로 추정되는 관뚜껑 두개가

놓여있다.

 

광개토 대왕릉비에서 북서쪽으로 300m 떨어져 있다.

거대한 자갈 무더기가 쌓여 있고 주위에 화강암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원래는 장군총처럼 화강암을 계단식으로 쌓아올린 석실묘였고,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장군총보다 4배정도 컸을 것이라고 한다.

 

무덤에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태왕의 능이 산처럼 평안하고,

큰 산처럼 굳건하길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태왕(太王)’이란 칭호는 광개토 대왕을 가리키므로,

광개토 대왕릉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2003년 중국이 능을 조사하면서 발견한 청동 방울이

이런 추정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방울의 몸체 사방에 ‘新卯年(신묘년)’,

‘好太王(호태왕)’, ‘所造鈴(소조령)’,

‘九十六(구십육)’이라고 3자씩 문자가 적혀 있었다.

 이 글을 해석하자면 ‘신묘년(391년)에 호태왕이 96번째 은방울을 만들었다.’라는 뜻으로,

신묘년은 광개토 대왕이 재위했던 해다. 

                                                            (다음백과 사전에서옮겨옴)

 

중국 집안시 광개토대왕, 장수왕릉 방문

https://youtu.be/ckY8Y49cj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