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경상도

북쪽으로 창을 낸 공북정

여울가 2021. 6. 17. 21:33

북쪽으로 창을 낸 공북정(拱北亭)

경북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 사제동에 있는
공북정을 다녀왔다.
건물은 모두 자물쇠로 잠겨있어
외관 만 볼 수 있는 것이 많이 아쉬웠다.

도촌리 사제마을은 우계 이씨가 세거하는 집성촌인데 종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북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지역은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자 벼슬을 버리고 궁벽한 시골 봉화로 낙향한 이수형(1435~1528)이

은거하던 곳이다.

그는 생육신으로 꼽히는 어계 조려, 관란 원호 등과 원주 치악산에 있는 바위에 충절을 맹세하며

나란히 이름을 새겨 놓고 당시 순흥 땅인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는 거실을 지으면서 북쪽에 창을 두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북쪽 방향에

단종이 유배된 영월의 청령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영월에 있는 단종을 사모하여 북쪽으로 문을 내고 북극성을 바라보듯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일생을 보냈다.

나중에 이광정은 단종에 대한 이수형의 충절을 기려 ‘우계 이씨 공북헌’이라는 현판을 달았고,
권두경은 그 방에 ‘천인실(千仞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제 마을의 우계 이씨는 조상 대대로 충절을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가치로 받아들였다.

이수형의 충절은 한 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이 마을의 괴화나무에 의해 상징되기도 한다.
공북헌의 서남쪽 지점에 서 있는 이 괴화나무는 이수형이 손수 심은 나무라 전해지는데,
이수형이 죽은 후 저절로 말라 죽었다가 단종이 신원되자 다시 살아났다.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는 지식인의 책무에 누구보다 엄격했던 선비 이수형.

단종에 대한 무한한 충정과 신의가 무정물인 나무까지도 감동케 했던 것이리라.

<문화재청 공식 블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