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서/2024년 프랑스 성지순례

19세기 보.불 전쟁시 발현하신 성모성지 퐁맹 대성당

여울가 2024. 9. 24. 13:07

240922

19세기 보.불 전쟁시 발현하신 성모성지  퐁맹 대성당

오늘 주일이고 4시 미사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몽생 미쉘수도원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퐁맹 성모발현 성지로 달렸다.
참고 있었던 비가 끝내 내리고
약간 으슬거리는 날에 퐁맹성지에 도착했다.

발현을 목격했던 헛간에 들어가서
성모발현 관련 영상과 다섯번 변하신  성상을 보았다.

뒤이어 4시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는 원래 발현당시 있었던 성당에서 봉헌했는데, 당시 천장벽화가 파란 하늘에 노란별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발현한 성모님이 파란색에 노란별이 새겨진 망토를 입고 나타나셔서 아이들은 익숙한 무늬를 보고 바로 성모님인 걸 알았다고...
성모님 전에 촛불 봉헌도 하고
3시간 동안 다섯번씩 변하신 성모님 모습이 신기했다.
모습의 변화라기 보다는소품의 유무,
불켜지고 꺼진 상태, 손동작 등이 약간 달랐다.
이 마을에서 사는 39명의 청년들이 전쟁터에 끌려갔기에 주민들은 더 열심히 묵주기도를 했다.
성모님 발현 이후 39명의 청년들이 무사히 돌아왔다고...

어른 눈에는 안 보이고 아이들 4명 눈에만 보였다는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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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벌어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계속 패배할 때,
퐁맹과 라발을 비롯한 프랑스 전역에서 국민들이 묵주기도를 드린 결과
성모님이 발현하셨고, 라발을 향한 프로이센의 공격이 중단되어 퐁맹뿐
아니라 프랑스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71년 1월 17일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브르타뉴 지방의 작은 마을
퐁맹에서 성모님이 발현하셨다. 폭설까지 내린 추운 날씨에 저녁 6시경
12세의 외젠 바르베데트와 10세의 조제프 바르베데트 형제는 아버지 세자르와 함께 헛간에서 말에게 먹일 건초를 다듬고 있었다. 외젠은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밖을 내다보다가 건너편 집의 지붕 6m 위 공중에서 키가 크고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가족들을 불러 지붕을 보라고 했으나, 이웃인 자네트와 아버지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하고 동생 조세프만은
황금색 별이 새겨진 푸른색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있다고 말하였다.

학교 교사인 비탈린 수녀와 학교에서 만난 3명의 아이들에게 지붕 위를 보게 했는데, 11세의 프랑수아즈 리셰르와 9세의 잔마리 레보세 만이 두 형제가 이야기 한대로 황금색 별이 새겨진 짙은 푸른색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첫 번째 발현이었다.

두 번째 단계 때 여인의 모습에 변화가 있었다.
여인을 감싸는 푸른색 타원형 프레임이 생겨났고, 프레임 안쪽에 불이 켜지지 않은 4개의 양초가 나타났는데,
2개는 여인의 어깨 양쪽에, 나머지 2개는 무릎 높이 정도에 나타났다.

프레임 밖에 있던 별들이 40개 정도가 여인의 발밑으로 모였다.
여인의 발아래 현수막 같은 흰색 판인 나타나더니,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천천히 금색으로 한 글자씩 쓰이기 시작하였다.

'오. 나의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하느님께서 곧 너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나의 아들이 움직일 것이다.'

아이들이 읽는 소리에 곧 전쟁이 멈출 것이라 마을 사람들이 희망에 차올라 기뻐하면서, '나의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지붕 위의 여인이 성모님이라 생각하였다.

세 번째 단계 때는 그 지역 성가인 '희망의 어머니'를 부르자, 성모님이 매우 슬픈 표정을 지으셨고, 성모님을 양손을 펼쳐 어깨 위로 올리시고 성가의 리듬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무언인가를 말씀하셨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네 번째 단계가 사람들이
'주님, 용서하소서'를 부르자 성모님의 가슴에 등장한 붉은 십자가를 양손으로 붙잡고 계셨는데 붉은 십자가 위에 있는 작은 흰색 판에 '예수 그리스도'라고 적혀 있었다.
성모님은 슬픈 표정으로 수난 받으신 붉은 예수 그리스도 와 십자가를 한참 바라보셨다.

다섯 번째 단계는 마리에두아르 수녀가 ' 바다이신 별이신 성모'를 부르자, 성모님의 가슴에 있던 붉은 십자가가 사라지면서 양손을 아래로 내리시자 양쪽 어깨에 희망을 나타내는 흰색
십자가가 나타났다.
4개의 촛불이 켜진 상태에서 성모님 발아래부터 커다란 흰색 천이 서서히 올라왔고, 푸른색 프레임과 4개의 촛불이 사라졌고 성모님은 마지막 미소를 보여 주셨다.

밤 9시경에 아이들이 침묵하자 신부가 아직도 성모님이 보이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아니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끝났습니다"라고 답했다.

성모님이 발현하신 곳은 바르베데트 가족의 헛간 건너편에 있는 오귀스탱 기드코크의 집 지붕 30m 위 허공이었다.

퐁맹 대성당은
1872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에 퐁맹에서의 성모님 발현과 관련한 특별
교령을 발표하며 성모님이 참으로 발현하셨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공인하였고, 1873년 성당 건립이 시작되어 1900년에 축성되었으며 1905년 2월 21일 교황 비오 10세가 대성당으로 승격하였다.

퐁맹의 경우 발현 현장에 본당 사제인 게랭 신부가 있었으며 그때 벌어진 모든 상황을 직접 목격하였기에 사제에게 발현을 전달하는 과정이 필요 없었고 외부로부터의 질문도 사제가 담당할 수 있어서 시현자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

퐁맹의 시현자 4명 중 3명은 성모님 발현의 시현자답게 자신의 삶을 하느님과 교회에 바치는 영적인 삶을 살았다. 외젠은 신부가 되었으며 나중에 라발 교구의 주임신부로 일했다.

동생 조제프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의 오브라띠 선교 수도회의 사제가 되었다. 이 선교회가 퐁맹 성지를 관리하게 되어 조제프는 성모님의 발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잔마르는 보르도 성가정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프랑수아즈는 1900년부터 외젠 신부의 집안일을 돌보다가 시현자중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발현 의미는 프랑스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하였고,
전 국민이 드린 묵주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없었다면 프랑스는 회복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성모님의 발현하신 날을 기점으로 전투가 중단되고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발현 이후 기적을 경험한 프랑스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의 기도를 들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자부심을 갖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퐁맹 발현 후 프랑스 국민은 달라졌고, 짧은 시간 내에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대를 펼쳐 나갔는데, 이는 1871년 성모님 발현이 없었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였을 것이다.

참고 문헌: 세계의 성모 발현 성지를 찾아서 (저자: 최하경)

프랑스 퐁맹성모발현성지
https://youtu.be/jJdjovfB4uM?si=m_jMmW3V763jaz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