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백성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일은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버겁기도 하지만
그렇게 힘든 시간보다는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이
주어진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한가족으로 살아 가나 봅니다.
샬롬공동체의 1박2일 피정을 앞두고
가족을 남겨 두고 가야하는 미안함과 무거운 마음들이
기도로써 의탁하고 준비했습니다.
가져가야 할 도구를 챙기는 손길,
배고픔을 달래야 할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이
주님을 자녀이기에 맛보는 행복이었을 겁니다.
가평의 깊은 산에 자리 잡은 토마스의 집은
누가 봐도 완벽한 피정의 집이었습니다.
산마루에 걸린 안개들 사이로 새초롬히 세수한
산새들이 우릴 맞이합니다.
먼저 도착한 쥔장은 십자가의 길에 사용할 십자가를
자작나무와 부서진 고상을 이용하여 잘도 만들어 놓고,
산에서 베어온 장작을 지게에 메고 들어옵니다.
지게 위에 앉은 장작들도 우릴 보고 환하게 웃습니다.
공동체국의 부회장이신 천시몬 형제님과 공동체국장 변루시아님,
그리고 영성부장 우아가다님도 함께 하시니 더욱 더 감사합니다.
시작기도에 이어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장크리스티나 자매가 제작한 14처의 팻말이 산길 양옆의 나무에
의지해 서 있습니다.
자작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제비 뽑기한 순번으로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오릅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사랑만큼 크고 무겁습니다.
1처,2처,3처,...
저마다 자기가 뽑은 곳에 설때마다 눈물을 흘립니다.
서러운 눈물, 뜨거운 눈물이 양볼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봄바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스산하고 차거운 바람이
십자가와 우리들을 파고 듭니다.
예수님의 외롭고도 비통한 아픔이 가슴속에 전해옵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외치는 군중들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도망간 제자들 대신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져 주기도 하지만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기도 했지만
세 번씩이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시면서
어머니와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십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고 또 울면서
마지막 14처에 다달았을 때 스산하게 불던 바람도 잠잠합니다.
그토록 짖어대던 누렁이와 백구도 갑자기 얌전히 지켜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돌무덤에 묻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돌아섭니다.
자비의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는 정말로 은혜로웠습니다.
사순절이기에 고기는 생략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숯불에 직접 구운 등심맛은 주님이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나눔시간에...
날아다니는 나비와 흔들리는 단풍나무와도 대화를 한다는
토마스님은 오늘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박고 INRI 표식까지
박은 순간 광풍이 몰아쳐서 예수니께 얼마나 죄스러웠는지...
그러나 말씀사탕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보호하리라...고 말씀하셔서 안심했다고...
지렁이를 키우시며 유기농 퇴비를 마련하신다는
한세실리아님은 기도중에
예수님의 손이 앞으로 확 왔었는데 너무 놀라서 잡질 못했다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광신도 집단에 와 있음이
행복하다는 박아녜스님...
성서 신,구약을 모두 필사 하셨다는 이세실리아님은
기도 중에 환히 웃는 예수님을 보았다고...
유아셀라님는 성서를 믿지 못하다가 정말 자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첫사랑이라고...
지금 자기가 져야할 십자가를 벗어 버리고 여기에 와 있다며
울먹이는 조소화데레사...
평소에 십자가의 고통 없이 구원받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14처중 제8처를 지게 된 걸 보니
남을 위로하는 일을 맡기신것 같다는 우아가다님...
성질이 급하고 뭐든지 내가 다 해야한다며,
마리아이기 보다는 마르타임을 자인하는 장크리스티나...
악을 미워하고 꾸준히 선을 행하십시오[로마12:9]를
말씀 사탕으로 뽑은 신베로니카는
정말 자기에게 딱 맞는 말씀이라며...
성모님께서 그런 저희를 보고 너무 귀엽다며 웃으십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산속의 밤은 유난히 캄캄합니다...
손에 손에 초 한자루씩 들고 성모님께 갔습니다.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
심령기도와 영가가 하늘까지 퍼집니다...
하늘의 별들이 땅으로 내려 옵니다...
다시 별들이 영가를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잔디밭에 빙 둘러 앉아서 한없이 한없이 영가를 부릅니다...
하늘과 땅이 일치하고,
하느님과 우리들이 한 몸이 됩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2시입니다...
잔디밭에서 뒤집어썼던 담요를 덮고 잠을 잠니다...
그 담요가 이슬에 젖어 한기가 듭니다...
그래도 행복합니다...그래도 따뜻합니다...
새벽에...
설악공소에 미사를 갑니다...
성가를 부르며 새벽을 깨웁니다...
시골의 공소가 화려합니다...
복음화의 식구들이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맨손체조를 합니다.
열심히 따라 합니다...재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쑥을 캐러 나갑니다...
여린 쑥잎들이 여기저기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밉니다.
이 쑥들은 수요 열린미사의 아침 식탁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각자 받은 은총의 열매를 가슴에 가득 담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모님께 감사드립니다. (200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