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읍성은 겨울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성벽으로 담쟁이 넝쿨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 왜구들이 해안지방으로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서 태종17년(1417년)부터 세종3년(1421년)사이에 당시 덕산에 있던
충청 병마절도사영을 이곳으로 옮기고자 축성하였다.
그 후 230년 간 병마절도사영으로 군사권을 행사하다가 청주로 이송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져서 해미읍성으로 이용되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석재를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 및 작청 등 건물들이 빼곡하게 있었으며,
성의 둘레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탱자나무를 둘러 심었다고 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지금은 탱자나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 회화나무(일명 호야나무)에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철사줄로 묶어서
순교하게 하였다는데 지금도 나무 가지에 철사줄을 매단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를 본의아니게 돕게 된 호야나무는 중병을 앓아 시멘트로 수술을 해 놓았고
바로 옆 관아에는 천주교 박해시 형틀을 쓴 죄인 아닌 죄인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옥사 : 천주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있던 옥사를 복원하였다.
내옥과 외옥이 각각 3칸씩 있고 남녀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 투옥 및 처형하였는데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께서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이 옥사는 1935년 간행된 해미순교자 약사 기록을 토대로 복원되었다.)
'여행길에서 > 충청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북/제천]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의림지 (0) | 2011.09.01 |
---|---|
[충남/서산]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를 찾아서... (0) | 2011.07.22 |
[충북/제천]금수산 자락의 안녕을 기원하는 솟대문화공간(2) (0) | 2011.07.02 |
[충북/제천]하늘을 향한 희망의 꿈 능강 솟대문화공간(1) (0) | 2011.07.02 |
[충북/제천]테마가 있는 제천 산야초 마을에서의 맛난 점심 (0) | 2011.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