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충청도

[충남/서산]천주교 박해로 잘 알려진 해미읍성

여울가 2011. 7. 22. 19:42

해미읍성은 겨울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성벽으로 담쟁이 넝쿨들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다.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 왜구들이 해안지방으로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서 태종17년(1417년)부터 세종3년(1421년)사이에 당시 덕산에 있던

충청 병마절도사영을 이곳으로 옮기고자 축성하였다.

그 후 230년 간 병마절도사영으로 군사권을 행사하다가 청주로 이송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져서 해미읍성으로 이용되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석재를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 및 작청 등 건물들이 빼곡하게 있었으며,

성의 둘레에는 적의 침입을 막기위해 탱자나무를 둘러 심었다고 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지금은 탱자나무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 회화나무(일명 호야나무)에 천주교 신자들의 머리채를 철사줄로 묶어서

순교하게 하였다는데 지금도 나무 가지에 철사줄을 매단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를 본의아니게 돕게 된 호야나무는 중병을 앓아 시멘트로 수술을 해 놓았고

바로 옆 관아에는 천주교 박해시 형틀을 쓴 죄인 아닌 죄인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옥사 : 천주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있던 옥사를 복원하였다.

내옥과 외옥이 각각 3칸씩 있고 남녀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 투옥 및 처형하였는데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께서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하였다고 한다.

(이 옥사는 1935년 간행된  해미순교자 약사 기록을 토대로 복원되었다.)